프랑스·스웨덴서 극우정당 약진…이탈리아선 극우정권 출범
경제위기·반이민 분위기 타고 세력 확장…유럽 정치 대격변
(로마·서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황철환 기자 = 프랑스에서 주요 정치세력으로 올라서고 스웨덴에서는 원내 제2당이자 집권당 연합의 제1당이 된 극우세력이 이탈리아에서도 기염을 토했다.
25일(현지시간) 치러진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극우 세력이 주축이 된 이탈리아 우파 연합은 투표 뒤 발표된 출구조사에서 예상대로 상·하원 과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의 변방으로 치부되던 극우 세력이 주류로 거듭나며 이제는 유로존 내 3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의 집권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조르자 멜로니(45)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는 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 총리이자 2차대전 이후 집권한 첫 극우 지도자가 될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우파 연합이 승리한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표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탈리아는 8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9.0% 상승해 7월의 8.4%에 이어 급등세를 이어갔다.
이탈리아 극우 세력은 에너지·식료품 가격 급등과 구매력 감소라는 유권자들의 좌절감을 선거전에서 최대한 활용하며 지지세를 불렸다.
멜로니가 이끄는 Fdl은 지난해 2월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거국 내각을 구성할 때 유일하게 내각에 참가하지 않고 야당으로 남았다.
생활고 속에 지난 정부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의 표가 정부지출 확대, 대대적인 감세를 공약한 Fdl에 쏠리면서 멜로니는 반사이익을 고스란히 누렸다.
극우 세력이 힘을 키운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민과 난민에 적대적인 정서도 이들이 외연을 확장하는 데 일조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와 마주해 유럽의 관문 국가로 불리는 이탈리아에선 특히 난민에 적대적인 정서가 강하다.
2018년 조사에선 이민자들이 많아질수록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대답한 이탈리아 응답자 비율이 58%에 달했다. 이는 유럽 평균인 14%에 비해 4배가 높은 것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74%가 범죄율 상승은 이민자들의 책임이라고 답변해 유럽 평균인 57%를 크게 웃돌았다.
코로나19로 잠시 잠잠했던 아프리카 이주민·난민 행렬이 다시 이어지면서 반이민을 내세운 극우 세력의 힘도 커지기 시작했다.
멜로니는 최근 아프리카 이주민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큰 논란을 빚었다.
2차 가해란 비판과 함께 인종에 대한 혐오를 강화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멜로니 대표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더라도 부모가 외국인일 경우 이탈리아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정책을 내놨다.
지난 11일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선 네오 나치에 뿌리를 둔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20%가 넘는 득표율로 원내 제2당에 올라 화제가 됐다.
스웨덴민주당의 득표율은 2010년 5.7%, 2014년 12.9%, 2018년 17.5%에서 이번에 역대 최대인 20.6%를 기록했다.
2010년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할 때만 해도 스웨덴민주당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2015년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난민 유입이 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인구 1천30만명의 스웨덴에서 20년 전까지는 인구의 10%가 외국 태생이었지만 현재는 그 비율이 20%로 늘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저학력층을 중심으로 이민자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는 정서가 퍼졌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최근 이민자 거주지에서 발생한 강력 사건을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스웨덴 국민들의 이민자 혐오에 불을 붙였다.
국민들의 반이민 정서를 파고든 스웨덴민주당은 '이주민 제로', '외국인 범죄자 추방'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폭넓은 지지를 얻어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민주의 전통이 깊은 스웨덴에서 스웨덴민주당의 성공은 어떤 나라도 극우 정당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짚었다.
프랑스도 지난 6월 총선에서 유럽의 간판 극우 정치인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정통 보수정당 공화당(LR)을 제치고 우파 간판이 됐다.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의 유럽의회 의원인 군나르 벡은 "유럽의 주요 강대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스웨덴까지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실패한 범유럽 정통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유럽 시민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 급등으로 인한 생활비 부담에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악재가 더해졌다"며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 통제에 실패하면서 유럽 시민들은 그들의 정부와 유럽연합(EU) 체제에 불만을 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신나치와 파시즘 망령의 부활을 방불케 하는 유럽 극우세력의 약진과 관련해 일종의 '공포의 정치'가 작동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대란, 인플레 등 잇단 위기와 관련한 대중의 두려움을 자극함으로써 기성 정치집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극우세력이 내놓은 '대안'에 눈을 돌리게 하는데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영국 버밍엄대의 닉 치즈먼 정치학과 교수는 "식료품과 주유비 상승,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 하락, 불평등 증가, 계층 이동 감소, 이민에 대한 우려는 극우 지도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절망감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보수성향 유권자일수록 급격한 사회변화를 동반하는 이런 현상에 위협을 느끼는 정도가 높아 정치적으로 결집하기 쉽다는 점도 극우 득세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 측면이 강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저명한 포퓰리즘 전문가인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포퓰리즘의 역설은 실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종종 찾아내지만 그걸 더 나쁜 무엇인가로 대체하려 한다는 것"이라면서 "팬데믹 기간 (도널드) 트럼프와 다른 이들에게서 보았듯 (포퓰리스트들은) 정부를 운영하는데 전반적으로 매우 서툴다"고 말했다.
결국, 포퓰리즘과 결부된 극우 세력의 부활은 모든 문제의 해법을 지니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해당 국가 국민이 처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라고 CNN 방송은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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