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기인가] ⑦'킹달러'·전쟁…외부 위험요인도 '첩첩산중'

입력 2022-10-02 05:33   수정 2022-10-02 20:37

[한국경제 위기인가] ⑦'킹달러'·전쟁…외부 위험요인도 '첩첩산중'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최근 한국 경제의 위기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달러화 초강세다.
여기에 장기화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깊어져만 가는 미·중 간 공급망 갈등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외부 위험요인들이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 '슈퍼 매파' 연준…달러 초강세 끝이 안 보인다
연초 1,200원을 밑돌던 원/달러 환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거침 없는 기준금리 인상 행진에 최근 한때 1,440원 선까지 내줬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같은 위기 상황 때 수준으로 치솟은 것이다.
게다가 연준이 올해 들어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끌어올리면서 이제 한국보다 오히려 0.75%포인트 높은 금리 역전 상태가 됐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공개된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에 따르면 연준의 기준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올해 말 4.4%, 내년 말 4.6%에 이른다.
연말까지 약 1.25%포인트 더 올릴 수 있고 내년에도 추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심화와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달러 초강세는 한국은 물론 중국 등 신흥국과 영국·일본 등 선진국까지 강타하며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유로화 등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의 지표인 달러 지수는 지난달 FOMC 이후 114선을 돌파, 2002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이에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각각 20년 만에 최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영국이 대폭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렸다.
이처럼 강달러는 각국의 금리 인상을 이끌면서 세계적 경기후퇴 가능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달러화 초강세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같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엔화·위안화 가치의 급락으로 글로벌 펀드들이 전체 아시아 지역에서 자금을 빼낼 경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짐 오닐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은 엔/달러 환율 150엔과 같은 심리적 저항선이 뚫리면 아시아 금융위기 수준의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도 25년 만에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낸 가운데 호주 맥쿼리캐피털 관계자는 무역수지 적자를 들어 한국 원화를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 통화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 우크라전에 유럽 위기 불가피…'핵전쟁 위협'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8개월째로 접어든 가운데 유럽의 에너지난과 임박한 경기후퇴도 불안 요인이다.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공급 중단으로 올겨울 '에너지 대란'에 직면해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 177% 폭등한 상태다.
이에 유럽이 다급하게 대체 에너지 확보에 나서면서 미국산 등 액화천연가스(LNG)를 놓고 한국과도 경쟁상대가 됐다.
동북아 LNG 가격 지표인 일본·한국 가격지표(JKM) 선물 가격은 연초 이후 28% 상승했다.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까지 뛰며 수입단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에너지 무기화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1970년대 '오일 쇼크'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위기와 금리 인상으로 유럽의 경기후퇴 가능성이 커지는 점도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먹구름으로 다가온다.
최근 유로화 가치가 '1유로=1달러' 선 밑으로 주저앉은 데 이어 9월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0%로 치솟아 1997년 통계 집계 시작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따라서 유럽중앙은행(ECB)도 당분간 연준과 같이 0.75%포인트 등 대폭 금리 인상을 지속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유로존이 올해 4분기 경기후퇴에 빠져 올해 3분기∼내년 1분기에 국내총생산(GDP)이 0.9%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 위협까지 하면서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극대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내 4개 점령지의 합병을 선언하면서 "미국은 일본에 두 차례 핵무기를 사용하는 선례를 남겼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점령지를 자국령으로 만들면서 영토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주장이 가능해져 핵 사용 위험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같은 날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아직 이 같은 행동을 관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핵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 미중 공급망 '디커플링' 속 한국 입지 축소 우려도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배제와 자국 내 제조업 강화를 밀어붙이면서, 한국도 경제적 타격을 입고 미중 사이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한국산 전기차가 세액공제 혜택에서 제외된 게 대표적 사례다.
IRA에 따르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만 올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내년부터는 미국 등에서 생산된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하는 등 추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북미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현대차[005380]·기아[000270]가 최소 수 년간 최대 대당 7천500달러(약 1천78만원)에 이르는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 자동차 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9일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한국 측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법 집행 과정에서 우려를 해소할 방안이 마련되도록 잘 챙겨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의회에서 법을 개정할 가능성이 희박해 조속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대중 견제 핵심인 반도체 분야에서도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관련 협의체 '칩 4'를 둘러싼 한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지만, 한국 반도체의 최대 시장인 중국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칫 제2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이에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칩4 예비회의 이후 본회의 참석 여부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며 "국익에 입각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CNBC 방송은 칩4를 둘러싸고 한미간에 균열 조짐이 있다면서 중국이 세계 최대의 반도체 수입국이며 삼성전자 등의 핵심 시장인 만큼 참여국 간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요소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bs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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