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미국에 온 지 1년이 넘었다.
미국에서 새삼 절감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이곳은 말 그대로 자본주의의 나라라는 점. 그리고 이곳에서는 총기 소지가 허용된다는 사실이다.
길을 걷다가 내 옆을 스치는 누군가의 가방 안에 권총이 실제로 들어있을 수도 있는 나라. 쇼핑몰에서 실제 총기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그게 내 집 앞이 될 수도 있는 나라. 미국이다.
특히 올해는 유달리 비극적인 총격 사건이 잇달아 이어졌고, 미국 내에서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비등했다.
그럼에도 규제는 여전히 요원하다. 실제 강화된 총기 규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도 크지 않다.
한국이었다면 사안의 위중함을 감안할 때 규제법이 통과돼도 열 번은 통과됐을 법한 사안이지만, 공화당이고 민주당이고 미국인들은 총기 문제만 나오면 고개부터 흔들고 본다.
미국 최대 이권단체이자 공화당의 '자금줄'인 전미총기협회(NRA)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인 지인이 두 번 연달아 놀라움을 안긴 일이 있었다.
평범한 중산층인 그는 놀랍게도 총기 보유자였다. 불의의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공권력이 가장 강력한 나라 미국에서 아이러니였다.
그보다 놀라운 일은 그가 총기 규제를 강하게 지지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안전한 방어 수단으로서 총기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이 총기를 소지해야 한다는 이해가 갈 듯 안 갈 듯한 주장을 펴면서도, 규제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냉소적으로 NRA의 로비를 거론했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돈과 권력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공존한다. 다만 둘 사이에는 넘지 말아야 할 무형의 선이 존재하고, 그 선은 때로는 윤리이기도 때로는 정서법이기도 하다.
미국 역시 NRA에 대한 시선이 고운 것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이들의 로비는 굳건하고, 결국 따가운 비난에도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정수, 혹은 그림자라 할 만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사실 필라델피아였다.
최근 중간 선거 르포를 위해 필라델피아를 방문했다. 일정상 흑인 거주지도 포함됐다.
필라델피아 일부 지역은 상당히 험악하다는 경고를 여러 번 들은 뒤여서인지 위축되는 기분을 뒤로 하고 차를 조심스레 몰던 중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더니 길에 주차된 차의 옆유리가 아예 사라진 상태였다. 유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검은 비닐만이 대신 펄럭이며 비바람을 맞고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글자 그대로 '총 맞았나'였다. 그리고 나서는 왜 아직도 수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보험이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이곳은 아파도 보험이 있어야 병원에 갈 수 있는 나라 미국이니까.
아주 찰나의 순간, 미국에서만 가능한 온갖 가설들이 떠오르고 사라졌다. 그리고는 재빨리 차를 몰아 거리를 빠져나왔다. 그 차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한 채.
kyung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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