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대응이론 제시하고 실제 극복한 주인공에 노벨경제학상

입력 2022-10-10 21:28  

금융위기 대응이론 제시하고 실제 극복한 주인공에 노벨경제학상
버냉키 전 연준 의장과 뱅크런 모형 제공한 다이아몬드-딥비그 교수
"금융위기·코로나19 상황에서의 금융 역할로 수상자 위대성 증명돼"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곽민서 송은경 기자 =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10일 선정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 교수, 필립 딥비그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 등 3명은 은행과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역할에 대해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금융위기라는 것은 결국 투자자들이 동시에 시장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을 때 발생하는데, 그럴 때 정부가 어떻게 개입해서 이를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의 뒤를 이어 지난 2006년 미국 연준 의장에 취임해 2014년까지 재임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해결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1979년 박사 학위를 받은 버냉키 전 의장은 스탠퍼드대와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연준 의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미국 유력 싱크탱크인 워싱턴DC의 브루킹스연구소에 몸을 담고 있다.
버냉키 전 의장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대공황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런 그의 특성이 금융위기 때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무너질 때 이례적으로 보험회사인 AIG에 막대한 구제금융을 투입해 파산을 막았고, 금융시장 자금줄이 얼어붙자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했다.
과거 FRB 이사 시절 경기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현금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은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실현한 셈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1983년 대공황에 관한 첫 번째 주요 논문을 발표했다. 디플레이션이 담보 가치를 잠식해 차입자의 순자산을 위축시키면 차입자들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위험한 프로젝트로 뛰어든다. 이에 은행들은 점차 대출을 꺼리게 되고, 대신 정부 유가증권 투자를 선호하게 된다. 많은 차입자가 부도가 나고 담보가치가 떨어져 부채를 상환할 수 없게 되면 은행도 부도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디플레이션이 경제 활력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신용 흐름을 차단하게 된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다.



다이아몬드 교수와 딥비그 교수는 공동논문 등을 통해 '뱅크런'(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을 우려한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에 관한 이론적 모형을 제공했다.
이들은 1983년 유명 저널 중 하나인 '저널 오브 폴리티걸 이코노미'(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기고한 '뱅크런, 예금보험 그리고 유동성'(Bank Runs, Deposit Insurance, and Liquidity)에서 뱅크런에 관한 고전적인 분석을 제공한다.
이 논문에서 제시된 이른바 '다이아몬드-딥비그(D-D)' 모형은 폐쇄경제 하에서 은행은 항상 뱅크런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뱅크런은 금융시장에서 은행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동시에 상실돼 갑자기 유동성을 회수,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자금중개 기능이 무너져버리는 현상이다.
윤택 서울대 교수는 "은행이 좋은 효과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예금주들이 자신의 예금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두려움이 근거 없이 확대되면 뱅크런이 발생해 금융 시장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D-D 모형은 은행이 좋은 역할을 유지하려면 예금보험제도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모형"이라고 설명했다.
이승협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시장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은행은 자기자본은 적은 대신에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서 금융 중개 기능을 하는데, 투자자 공통의 신뢰 상실, 은행 건전성에 대한 신뢰 상실이 있으면 모두가 자금을 회수하면서 망가지게 된다"면서 "그런 메커니즘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론적인 기반을 다이아몬드 교수와 딥비그 교수가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두 교수는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어떻게 개입해서 그것을 막을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면서 "버냉키 전 의장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소위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에 정부가 어떤 식으로 개입을 하고 금융시장 건전성을 지킬 것인지에 관해 연구한 분"이라고 말했다.
'대차대조표 불황'은 일본의 장기불황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불황에 어려움을 겪는 경제 주체는 채무 과다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차입금을 최우선적으로 상환하기 때문에 유동성을 풀어도 소비나 투자의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버냉키 전 의장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이런 '대차대조표 불황' 개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 연구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도 전형적으로 모기지 시장에서 자산가치 폭락 때문에, 즉 대차대조표 안에 있는 자산 가격 폭락으로 생긴 일"이라며 "대차대조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모델을 만든 데 버냉키 전 의장의 업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버냉키 전 의장은 대공황과 일본 부동산 및 주식시장 붕괴 불황에 관해 연구를 많이 했는데, 2006년 연준 의장이 된 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연구 분야를 실전에 적용하게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버냉키 전 의장은 경제사적인 측면에서는 대공황을 거시경제학적으로 연구했고, 은행 혹은 금융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모형화한 측면에서 업적이 있다"면서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연준 의장으로서 한 일이 수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다이아몬드와 딥비그 교수 두 분은 미시경제학적으로 왜 은행 위기라는 게 생기는지, 금융 자체에 있는 속성을 이론화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엄청난 발전을 이룬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뱅크런, 예금보험 그리고 유동성'이라는 논문은 미시경제학, 미시금융에서는 지금까지도 가장 고전으로 인정받는 논문인데, 2008년 금융위기, 더 크게는 최근의 코로나19 위기에서 금융이 수행할 역할로 인해 이분들의 논문의 위대성이 증명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택 교수는 "D-D 모형은 1930년대 대공황뿐만 아니라 최근의 금융위기 과정 속에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pdhis9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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