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화전에 주변 나무마저 고사…"대부분 허가 면적보다 더 불살라"
개간지서 탄내 스멀스멀…이듬해 불 지르는 면적 늘어나는 악순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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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카푸루[브라질 아마조나스주]=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기온이 35도 안팎까지 오르는 브라질 아마존의 10월 한낮, 머리 위 아무런 보호 커버 없는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1시간 넘게 이동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바다처럼 심한 파도가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이따금 잔잔한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도 소소한 눈요깃거리였다.
모터에서 나는 일정한 소음과 함께 눈꺼풀이 감길 무렵 저 멀리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는 게 흐릿하게 보였다.
"숲에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이라는 마나카푸루 주민 후앙 마타(66)씨의 외침에 선글라스를 벗었다가 다시 썼다.
아마존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강 지류를 따라 구불구불 들어간 마나카푸루 외딴 열대우림 마을에서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낚시를 해 먹거리를 얻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한 채 사는 부족민은 아니다. 밖에서 전기도 끌어오고 나름대로 현대적인 시설을 갖춰 생활하고 있다.
특히 주식 중 하나인 타피오카(열대작물인 카사바 뿌리에서 채취한 녹말의 일종)를 얻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논밭을 개간하고 있었다.
1살짜리 아이와 함께 이곳에 사는 다닐루(21)·칼라이네(18) 부부는 그러나 일부 다른 마을에 가면 무분별한 불법 개간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다닐루 씨는 지난 6일(현지시간) "가족이나 이웃이 먹을 만큼만 음식을 구하려고 한다면 아마존은 살기에 너무 좋다"면서도 "자연을 그냥 다 죽이며 사는 게 문제"라고 호소했다.
다시 보트를 타고 이동해 다른 마을에 들어서자 아마존의 20대 청년이 '자연을 죽인다'고 표현한 이유를 냄새로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얀 잿가루 가득한 개간지에서는 탄내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검은 먹으로 물들인 듯한 땅 위에는 이미 검붉게 말라비틀어진 초목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작은 생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한 잿더미에서는 여전히 남은 불씨가 하얀 연기를 피워냈다.
농경지나 소와 말을 기르기 위한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풀이나 나무를 베어내고 땅에 불을 지르는 화전(火田)은 아마존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마타 씨는 "일부 허가를 받기도 하지만, 불법이 더 많다"며 "허가를 받더라도, 필요한 면적보다 조금 더 불을 지르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어떤 밭에서는 땅에 열대 식용작물인 카사바를 심어둔 흔적도 보였다. 그러나 땅을 조금 건드리자 카사바 줄기가 풀썩 쓰러졌다.
타피오카를 만드는 데 쓰는 뿌리를 살펴보니 푸석푸석해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보였다.
"한 두 해 흉작을 각오하더라도 땅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 일단 불을 지르는 것"이라는 마타 씨의 설명이 돌아왔다. 이동식으로 다른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불법 화전은 주변 멀쩡한 나무마저 고사시키고 있었다. 인근 땅이 함께 메말라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렇게 죽어버린 나무는 이듬해 잘려 나가 불태워 없어진다. 그게 화전 면적을 늘려가는 방식이라고 현지 주민은 전했다.
지난달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INPE)에서 분석해 발표한 아마존 위성 모니터링 화재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기준 올해 아마존 내에서 발생한 화재는 7만5천592건으로, 지난해 7만5천90건을 이미 넘어섰다.
특히 화전은 아마존의 건기(8∼10월)에 활발하게 이뤄진다. 자연 발화와 더불어 화재 건수도 평균적으로 이때 가장 많다.
환경단체들은 아마존 열대우림 화재가 기후변화와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면서 전 세계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아마존 청년 다닐루 씨는 "때론 사람들이 (불 지른 땅) 위에 집을 지어 올리기도 한다"며 "그럼 그곳에는 이제 영영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검게 그을린 언덕에 오르니 아마존 강이 뜨거운 오후 햇살을 받으며 유유히 흘러가는 게 보였다.
보트를 타고 도심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야속하게 연기는 여전히 눈에 들어왔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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