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미국 뉴욕에서 11일(현지시간) 치러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유엔 한국대표부는 충격에 빠진 분위기였다.
이사국 출마를 선언한 아시아 국가 8개 중 4위 안에만 들면 연임이 가능한 선거였다.
그러나 한국은 방글라데시와 몰디브, 베트남, 키르기스스탄에 뒤져 5위에 그쳤다. 한국은 아프가니스탄과 바레인, 몽골과 함께 낙선했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일반인의 상식과 동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납득하기 힘든 결과다.
아시아 국가 중 최다 표인 160표를 받고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 된 방글라데시는 국경없는기자회가 2017년 발표한 언론자유 순위에서 180개국 중 146위에 그친 나라다.
2위에 오른 몰디브는 종교의 자유가 제한됐다. 헌법에 '국민은 수니파 무슬림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고, 이슬람 신앙에 어긋나는 표현과 동성애는 불법이다.
공산당 독재 체제에서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 베트남도 국제사회에서 인권 모범국이라고 평가하기 힘든 국가다.
한국을 3표 차이로 제치고 인권이사회 이사국이 된 키르기스스탄은 납치 혼과 조혼 등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전통문화가 존재한다.
한국대표부의 한 외교관은 한국의 낙선 원인을 유엔의 독특한 선거 문화에서 찾기도 했다.
193개 회원국이 동등하게 1표를 행사하기 때문에 각종 선거에서 표를 교환하거나, 번갈아 가면서 표를 주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선거에서 A국에 표를 던졌다면, 다음 선거에선 B국에 표를 던져 A-B국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맞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유엔 산하 각종 기구의 선거에 자주 출마하는 국가는 적게 출마하는 국가에 비해 득표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이 국가뿐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도 유엔 산하 각종 기구의 선거에 출마한 것은 14회나 된다는 게 한 외교관의 전언이다.
너무 많이 출마를 해 득표력을 소진한 탓에 인권이사회 선거에서 손해를 본 것 같다는 게 한 외교관의 추측이었다.
그러나 선거에 자주 나오는 국가가 불리하다는 가설대로라면 각종 국제기구 선거에 자주 출마하지 않는 바레인이나 몽골이 1표만 얻고 낙선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만약 유엔의 선거 문화 때문에 낙선했다는 분석이 맞다면 정부의 외교적 대응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해진다.
이사국 연임에 도전했으면서도 유엔 회원국의 여론을 반영하는 선거 전략을 세우지 못했거나, 선거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대응이 부족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수년간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인권 현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확산한 것이 낙선 원인이 아니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유엔 회원국의 공동 설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지난해 현직이었던 정의용 외교장관은 유엔 본부가 위치한 뉴욕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공개행사에서 "우리는 중국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중국 정부의 공세적 외교를 감싸기도 했다.
지난 2020년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된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때 현직이었던 강경화 외교장관은 CNN과의 영어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인권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G7(주요 7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다는 국가의 외교장관이 공개적으로 인권탄압국을 감싸고,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셈이다.
어찌 됐든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연임 실패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지키는 것이다.
유엔 한국대표부의 또 다른 외교관은 "낙선 원인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유엔의 독특한 선거 문화' 같은 두루뭉술한 분석 대신 정확한 분석 결과가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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