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재현 논설위원 = '한국 사람은 밥심'이라는 오랜 구전이 있다. 밥심은 '밥을 먹으면 생기는 힘'이라는 순우리말이다. 그런데 '심이 아니고 힘'이라는 둥 '심자가 마음심(心)이냐'는 둥 이런 말을 했다가는 딱 '꼰대' 취급받기에 십상이다. 젊은 세대에 별로 와닿지 않아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비슷한 케이스였다. 2020년 5월 그는 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 사 먹었다는 글을 입에 올리며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모처럼 국거리 소고기도 사고 평소 먹고 싶었던 시루떡도 주문했다"는 '70대 늙은이'라는 네티즌 글에 감동해 남다른 소감을 밝힌 것이었다. 세계 최빈국 시절을 표현한 '흰 쌀밥에 고깃국'이 소환되자 야당은 물론이고 청와대 내부에서도 '세상 달라진 걸 너무 모른다'는 말들이 나왔다. 당선과 동시에 취임한 직후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과 함께 '테이크아웃 커피'를 뽑아 들고 청와대 경내를 거닌 모습과는 너무나 대비됐다. '밥 대신 커피'라는 젊은 세대를 열광케 한 '커피 산책' 이벤트 효과가 워낙 강렬했기에 '소고기 시루떡' 메시지가 주는 당혹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경제통계를 봐도 쌀과 커피는 희비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비대면 코로나 시국에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이 늘긴 했지만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사상 최저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2021년 1인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55.8g이었다. 밥 한 공기에 쌀 100g이 들어가니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공기 반 정도만 먹는 셈이다. 30년 전인 1991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도시락과 김밥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도 양곡 사정이 이러하니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정부가 아무리 쌀 소비 촉진 운동을 벌여도 한국인이 밥을 잘 먹지 않는 것은 밥 말고 먹을 게 너무 많아서다. 비만과 당뇨 인구가 폭증하면서 흰 쌀밥으로 대표되는 탄수화물이 만병의 근원인 양 인식되는 탓도 크다. 쌀과 반비례해 생수 소비량은 물부족 현상이 생길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노년층이 쌀이 없어 물을 마셨다면 그 이후 세대는 돈이 없어 물 사먹기 힘든 나라가 됐다.
민주당이 정부가 쌀 초과 생산분을 의무적으로 매입해 관리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태세다. 12일에는 농해수위 안건조정위에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참여해 여당의 불참 속에 단독 처리했다. 여권은 재정 파탄으로 국가적 재앙이 올 것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현재 정부가 매입, 관리하는 비용만 수조원이고 2005년부터 공공비축제 도입 후 소요된 재정이 23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매년 쌀이 남아돌아 이제는 보관하는 땅도 부족해졌다. 김정은 시대에도 '흰 쌀밥에 고깃국' 타령을 하는 북한에 주려고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안 받겠단다. 민주당은 '식량안보'를 처리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공공비축제 도입 후 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적은 4차례, 그것도 겨우 넘었을 뿐이다. 쌀 매입이 '납세의 의무'가 된다면 배추, 과일 등 다른 작물 재배 농가도 들고 일어서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민주당이 혹시 특정 표심을 생각했다면 '공정'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와 도시 서민들의 팍팍한 처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표심을 노린 게 아니라면 옛말이 된 밥심과 농활(80년대 대학생들의 농촌지원활동)의 추억에 빠져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임기 초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다가 허무하게 정권을 내준 문재인 정부를 두고는 여러 패인 분석이 나온다.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지 않고 과거 자신들의 생각과 잣대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지적일 것이다. 당장 곤경에 처한 쌀농가도 살면서 도시 서민들도 수긍하고, 재집권을 말하는 야당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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