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위기 중첩해 일어난 '검은 토요일', 용케도 막판에 인류 종말 모면
핵전쟁 위험 본격화하면 누구도 통제 못하게 될 수도
[※편집자 주 : '뉴스 뒤 역사'는 주요 국제뉴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건, 장소, 인물, 예술작품 등을 찾아 소개하는 부정기 연재물입니다.]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우리는 승리하더라도 남는 것은 입속의 재뿐일 세계 핵전쟁의 위험을 성급하게, 또는 불필요하게 무릅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건 그러한 위험에 직면해야 한다면 회피하지도 않겠습니다."
1962년 10월 22일 미국 동부시간 오후 7시, TV에 비친 존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가 핵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막겠다고 한 것은 소련이 쿠바에서 미국에 핵미사일을 겨냥하는 사태였다. 케네디는 쿠바에 들여오는 것은 '방어용' 무기일 뿐이라는 소련의 거듭된 언명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여러 증거는 쿠바에 핵미사일 발사 기지들이 건설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케네디는 이를 막기 위해 쿠바로 향하는 해상 운송로에 봉쇄선을 설정하고 이를 통과하는 모든 선박을 검색해 미사일과 관련된 장비, 물자의 반입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전쟁 행위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상 봉쇄(blockade)를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긴장의 수위를 낮추고 타협의 가능성을 남겨둔다는 의미에서 그는 이 말 대신에 주로 검역과 관련해 쓰이는 '격리'(quarantine)라는 용어를 동원했다. 어쨌거나 공해상에서 적대국 선박을 검색하고 불응하는 경우 공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조치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다수 평범한 미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가 불현듯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핵전쟁의 공포에 떨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여곡절이 많았던 공식, 비공식 채널의 협상 끝에 소련이 쿠바에 들여온 미사일을 재반출하고 미사일 발사기지 공사를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천명한다는 합의에 도달해 사태는 마무리됐다. 소련은 미국이 이탈리아와 튀르키예(터키)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철수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도 이를 수용하기로 했으나 이 내용은 공식 발표에는 빠져 있었다.
이 사태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이러한 결말보다는 아마겟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케네디의 연설 이전 미국 정보당국이 소련 미사일의 쿠바 배치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10월 16일부터 소련이 이들 미사일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28일까지 한순간에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었던 위험한 고비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1962년 10월 27일에는 개별적으로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다고 부를 만한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잇따라 터져 나왔다. 많은 연구자와 언론 매체들이 이날을 '검은 토요일'로 부른다.
10월 27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훗날 '아마겟돈 편지'라고 불리게 되는 비밀 서한을 받았다. 미국에 선제 핵 공격을 가하자고 재촉하는 내용이었다. 미 합참은 그들대로 늦어도 월요일까지는 쿠바의 미사일 기지와 방공포 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폭격을 단행한다는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쿠바 상공에서 미국의 U-2 고공 정찰기가 쿠바에 배치된 SAM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고 조종사는 사망했다. 미국은 이러한 공격이 있으면 반격할 것이며 필요하면 쿠바 침공도 불사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터였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쿠바 상공을 저공 비행하던 정찰기들도 방공포 사격을 받았다. 이 문제를 논의한 국가안보회의 실행위원회(EXCOMM) 회의에서도 최소한 쿠바 방공포대를 폭격해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마음을 돌려 한 번 더 이러한 공격이 있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중히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또 다른 U-2 정찰기가 90분간 소련 극동의 영공을 침범했다. 대통령은 물론 군 수뇌부조차 이 엄중한 시기에도 해당 정찰기가 북극 상공에서 공기 시료를 채집하는 평소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 정찰기가 영공 안쪽 500㎞까지 깊숙이 침범해온 것에 화들짝 놀란 소련은 미그 전투기들을 출격시켰고 미국에서는 이에 대응해 공대공 핵미사일을 장착한 F-102 전투기들이 출동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U-2기 조종사의 어이없는 실수에 어찌나 화가 났던지 보고를 받자마자 "꼭 말귀를 못 알아먹는 개XX이 있다니까"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쿠바 인근 해역에서 소련 잠수함에 미국 군함들이 신호용 폭뢰를 투하한 것도 이날이었다. 해상 봉쇄에 투입된 미 해군은 봉쇄선 안쪽으로 들어온 잠수함에 대해서는 수면 위로 부상해 검문을 받으라는 의미로 신호용 폭뢰를 투하하라는 지침을 받았고 이 같은 절차는 소련에도 통보했다. 그러나 소련이 이를 일선 지휘관들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 군함들에 쫓기다 바닷속 깊이 숨은 소련 B-59 잠수함의 함장은 자신이 포위돼 폭뢰 공격을 받는 줄로만 알았다. 미국은 몰랐지만 사실 이 잠수함은 핵 어뢰를 탑재하고 있었고 이미 전쟁이 벌어진 것으로 생각한 함장은 이를 모조리 발사한 뒤 명예로운 최후를 맞기로 결심했다. 함장은 자신의 권한으로 핵 어뢰를 발사할 수도 있었지만 마침 이 잠수함에 타고 있던 함대 참모장의 설득에 따라 막판에 뜻을 굽혔다.
당시에 미국이 알았다면 기절초풍했을 일은 또 있었다. 소련군이 쿠바 내 미 해군기지가 있는 관타나모에서 불과 24㎞ 떨어진 곳으로 핵탄두가 장착된 크루즈 미사일을 옮겨온 것이다. 이 미사일은 현지 대령급 지휘관이 모스크바의 명령에 따라 발사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암호나 잠금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중위 한 명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병사 몇 명과 함께 날려 보낼 수도 있었다.
'검은 토요일' 현재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 60대 가운데 8분의 1이 항시 체공한 상태에서 공산권 전역에 있는 목표를 타격할 준비를 마쳤고 B-47 폭격기 183대는 핵무장을 갖춘 채로 미국 전역의 비행장에 흩어져 15분 대기 상태에 있었다. 장거리 미사일 136기도 발사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소련 역시 비슷한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쿠바와 카리브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또 평소였더라면 역사책에 이름 한번 등장하지 않았을 하위 계급 군인이나 관리들이 한순간의 판단 착오나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핵전쟁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케네디나 흐루쇼프조차도 아마겟돈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상황을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서방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위협이 허풍이 아닐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푸틴의 속마음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명심해야 할 것은 군사 강대국의 전제적 통치자로서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쓰는 결정을 내릴 수는 있지만 일단 그 길에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60년 전 10월에는 수많은 예측 불가의 사건이 일어났고 생각지도 못했던 '개XX들'이 등장했지만 용케도 최후 순간에 지구 종말의 운명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행운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무모하고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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