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지속에 주식은 물론 채권시장도 투자심리 '급랭'
금융당국 시장안정화 조치 잇따라…"시장안정판 기대"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이지헌 오주현 기자 =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 지속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 등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증시와 채권시장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시장 안정화 대책을 속속 내놓는 모습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국의 안정화 조치가 시장 불안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도의 시장 안정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 글로벌 긴축에 돈줄 마르는 기업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3년 만기 우량 회사채(AA- 등급)와 같은 만기의 국고채 간 금리 차이(신용 스프레드)는 지난 14일 현재 1.113%포인트(p)로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벌어졌다.
코로나19 위기 시기를 제외하면 우량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가 이 수준까지 벌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고물가 지속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기존 예상보다 높은 연 4%대 후반으로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는 하락 폭이 커지고 채권 금리는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7월 3,300선까지 도달했던 코스피는 2,200선 언저리로 내려앉았고, 투자심리 부진에 기업공개(IPO) 계획을 철회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도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들은 올해 들어 9월까지 총 2조1천억원 어치의 회사채를 순상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높은 이자 부담에 회사채 발행 물량이 줄어든 데다 정작 발행에 나선 기업들도 목표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실패하는 사례가 잇따른 영향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된 금액을 전체 발행금액으로 나눈 미매각률이 20.5%에 달했다.
◇ "빅스텝 충격 줄이자" 시장 안정조치 봇물
시장 불안심리가 갈수록 확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부도 2020년 코로나19 위기 당시 내놓았던 각종 시장 안정화 수단들을 다시 하나둘씩 꺼내놓으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한은이 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한 지난 7월 13일 기존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의 운영시한을 내년 3월 말까지로 연장하고 매입 규모를 6조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가파른 금리 상승 및 신용 스프레드 확대로 저신용, 취약기업의 회사채·CP 발행이 위축되고 차환 위험이 우려되면서 나온 조처다.
코스피가 2년 2개월 만에 2,200선 아래로 주저앉고 환율이 장중 달러당 1,440원을 돌파한 지난달 28일에는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 재가동을 맞대응 카드로 꺼냈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는 2조원 규모의 긴급 국채 바이백(조기상환)을 실시한다고 밝혔고, 한은도 3조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발표해 채권시장 불안심리 악화에 대응했다.
증안펀드는 재약정 체결을 거쳐 이달 중 자금 투입 채비를 마칠 전망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금융당국이 증안펀드 재가동을 준비하면서 공매도 전면 금지 카드도 재논의에 나섰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은이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한 지난 12일에도 채권·자금시장 경색을 막기 위한 다양한 조처가 나왔다.
금융당국은 우선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의 한도를 6조원에서 8조원으로 다시 확대하기로 했다.
정책금융기관은 이들 프로그램을 활용해 저신용 회사채 및 CP 등 수급 여건이 어려운 부문을 중심으로 최대 2조원을 추가로 매입할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조성했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도 현재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1조6천억원 남은 만큼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회사채·CP 매입에 활용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증안펀드에 이어 채안펀드도 애초 한도인 20조원을 필요할 때 조달할 수 있도록 출연 금융기관과 재약정을 맺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채안펀드는 주로 우량 회사채를 매입해 채권시장 안정화에 기여하는 임무를 수행할 전망이다.
◇ "근본요인은 긴축…정부, 시장 안정판 역할 기대"
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가 투자심리 악화에 어느 정도 기여하겠지만 시장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근 금융 불안이 고물가 지속과 강도 높은 통화 긴축에 주로 기인하기 때문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008560] 연구원은 "채안펀드를 재가동하면 최소한 지금 냉각된 투자 심리를 완화하는 지원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지금은 국채시장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시장 추세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은기 삼성증권[016360]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신용 스프레드 확대의 원인이 신용위험에 대한 부담보다는 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유동성 부족이라는 점에서 시장 안정화 방안이 큰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소한의 시장 안정판 역할을 해주는 정책 지원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크다"며 "연말까지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 발행 이슈가 있는 만큼 단기자금 시장에 대한 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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