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핵무기가 투하된 이후 처음으로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전 세계에 드리우고 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전세(戰勢)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자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면서 서방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맞서도록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를 지원하고 있고, 그 덕에 우크라이나의 방어는 꽤 효과를 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물러서지 않는 한 전쟁 장기화는 불 보듯 뻔하다. 궁지에 몰린 푸틴이 핵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국면이다.
물론 미국은 아직 그러한 징후가 없다는 대외적인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또 하나는 북한이다. 탄도미사일 발사를 이어가며 한반도 정세를 자극하던 북한은 급기야 전술핵 사용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도발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북한이 지금까지 6번의 핵실험을 감행한 것을 생각하면 한반도에 '핵 먹구름'을 몰고 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력 법제화에 이어 최근 보름여 간 집중한 중거리·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을 핵무기 사용과 연관시키면서 그 수준은 다르게 느껴진다.
국제적으로 공식 인정되지 않았을 뿐이지 북한은 이미 핵무기는 물론 이를 실어나를 다양한 탑재체 능력까지 상당할 것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핵 공포'의 한가운데에 미국이 있다.
미국 주도의 지원으로 푸틴이 재래식 전쟁에서 고전하며 핵을 언급하고 있고, 북한 핵 위협도 결국 미국의 관심을 끌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선 러시아와 북한이란 '두 개의 핵 위협'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눈길을 끄는 건 이 둘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은 사실상 전 외교력을 러시아에 쏟아붓고 있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퍼부은 군사 지원은 175억 달러(약 24조9천900억 원)에 달한다.
러시아가 실제로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경고음도 키우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최근 '아마겟돈'(성경에서 묘사된 인류 최후의 전쟁)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핵전쟁으로 인류가 공멸할 위험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해 듣는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는 각종 연설에서 입만 열면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온도 차가 느껴진다.
물론 북한의 잇단 도발에 핵추진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를 동해에 진입시켜 한미일 합동 훈련에 나서는 등 근래에 보기 드문 강력한 대응에 나서긴 했다.
하지만 북한이 비행금지구역 코앞까지 군용기를 내려보내고 완충구역에 포병사격을 하며 9·19 군사합의 파기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등 도발 강도를 더해가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규탄하지만 대화에 열려 있다'는 같은 얘기만 반복 중이다.
한국 일각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비롯해 핵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 배치 등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미국에선 공식적으론 어떤 방안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
물밑에선 '여러 방안'이 실제로 한미 간에 논의되고 있을 수 있지만, 겉으론 북한을 필요 이상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러시아에 집중하고 있기에 북한에 총력을 쏟을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12일 공개된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에선 중국과 러시아를 비중 있게 다루는 대신 북한에 대해선 확장 억제 강화, 지속적 외교라는 기존 입장만 표명됐을 뿐 구체적인 위협 평가 등은 거론되지 않았다. 북한이란 단어도 3차례만 등장해 북한 문제를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 언론인 도널드 커크는 최근 정치전문매체 더힐 기고에서 북한의 위협 고조 속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마치 두 개의 전쟁 수행이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한국을 부차적 위치로 밀어 넣었다고 분석했다.
이런 형세를 잘 아는 북한이 도발 수위를 수직 상승시키는 국면에서 미국이 과연 '결단'을 내릴지 관심이다. 핵 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할지가 그 핵심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핵심 기조로 하는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전략을 감안하면 한반도 내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래서 핵잠수함 등 한반도 주변에 전략 핵자산 상시 순환 배치 등 지금까지의 준비태세와는 다른 방안이 나올지에 이목이 쏠린다.
문제는 북한이 도발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는 것은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을 위한 수순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16일 열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결정될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지나가면 북한이 핵실험을 할 공간은 더욱 커진다. 이번엔 과거와 달리 한 번이 아닌 동시다발적인 핵실험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된 상태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북미 관계는 '분노와 화염'이란 극한 긴장을 거친 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화해 국면으로 급반전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 꼭 5년 만에 비슷한 긴장 고조 상황으로 가고 있는 2022년 바이든 정부에서 북한 도발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궁금하다.
핵실험을 한다면 추운 겨울 이전이 유력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두 달이다.
honeyb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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