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제의 상징' 불탔다…이란 반정부 시위 통제불능 치닫나

입력 2022-10-17 11:31  

'압제의 상징' 불탔다…이란 반정부 시위 통제불능 치닫나
반체제 양심수 가둔 테헤란 교도소에 화재·소요
WSJ "이슬람 신정, 출범 43년만에 최대 시험 직면"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인다는 이유로 구속된 20대 여성이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이란 전역에서 한 달 넘게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범과 반체제 인사들이 대거 수용된 교도소에서조차 화재와 소요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를 무릅쓴 강경진압에도 들불처럼 번진 시위를 억누르지 못하면서 이란 당국이 상황 통제 능력을 잃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란 사법부는 16일(현지시간) 오전 현재 테헤란 북부 에빈 교도소에서 발생한 화재가 완전히 진압됐고, 교도소 내 상황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법부는 전날 오후 9시 30분께 난 불과 소요 사태로 4명이 숨지고 61명이 다쳤다면서도 이번 사태는 반정부 시위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수감자간 다툼으로 불이 났고, 혼란을 틈타 일부 수감자가 탈옥을 시도하면서 충돌이 벌어졌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란 국내외 인권단체와 서방 언론은 이란 신정체제에 반하는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압제'를 상징하는 시설인 에빈 교도소에서 발생한 사태를 당국이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에빈 교도소는 이란 당국이 정치범이나 반정부 인사를 가둬온 곳으로 반인권적 처우로 악명이 높다. 현재 수감자 수는 약 1만5천명이고 이 중에는 반정부 시위 중 체포된 시위대 수백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에빈 교도소에서 불이 나기 전 일부 여성 수감자들이 감방문을 뚫고 나와 교도관들과 대치하며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일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7년간 에빈 교도소에 투옥됐다가 8개월 전 출소했다는 현지 인권활동가 아테나 다에미는 복수의 수감자 가족들로부터 이런 사실을 전해 들었다면서, 당국이 최루탄을 동원해 수감자들을 진압했으나 같은 날 저녁 불과 함께 더 큰 소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이란 당국이 밝힌 사건 경위를 신뢰할 수 없으며, 정치범을 포함한 수감자들의 신변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WSJ은 "(이란) 당국은 (에빈 교도소의) 통제를 회복했다고 말하지만, 이번 소요 사태는 이란 이슬람 신정이 출범 43년 만에 최대의 시험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신호"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13일 히잡 불량착용을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던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한 이번 시위는 그간 이란 지도부에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본격적인 반체제 시위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란 당국은 아미니가 경찰폭력이 아닌 지병 때문에 사망했다면서 강경진압 일변도로 맞서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현재까지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주말인 15일과 16일에도 이란 전역에서 시위가 이어졌다는 현지 언론 보도를 소개하면서 테헤란 대학 학생들은 '테헤란은 수용소가 됐고, 에빈(교도소)은 도살장이 됐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 CNN 방송은 테헤란 시내 샤리프 공과대학에서 시위 진압에 나선 보안군이 학생들에게 총을 쏘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왔다면서 충돌이 갈수록 거세지는 모양새라고 보도했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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