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이민가정 출신…드라기 총리 "이탈리아 스포츠 자존심" 응원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공격수인 파올라 에고누(23)가 인종차별을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대표팀 잠정 은퇴를 선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에고누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아펠도른에서 열린 2022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가 미국을 3-0으로 꺾은 뒤 시상식을 마치고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이것이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고 울면서 말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된 뒤 논란이 커지자 에고누는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Rai)와 인터뷰에서 "인종차별적 모욕과 메시지 때문에 힘들었다. 쉬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대표팀 완전 은퇴는 아니라고 밝혔다.
준결승에서 이탈리아가 브라질에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하자 에고누에겐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인종차별적 메시지가 쏟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지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에고누는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라 14살 때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했다.
에고누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이탈리아 선수단 기수를 맡았고, 지난 7월 끝난 발리볼네이스리그(VNL)에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현재 세계 최고의 라이트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일부 이탈리아 팬들은 그의 피부색을 문제 삼았다.
에고누는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뛰는데, 내가 이탈리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에고누가 인종차별로 인해 겪은 마음고생이 알려진 뒤 이탈리아 전역에서 응원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퇴임을 앞둔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16일 에고누에게 전화를 해 그녀가 "이탈리아 스포츠의 자부심"이라고 위로했다.
드라기 총리는 에고누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계속 입고 다음 대회에서도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반이민·반난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세력이 승리한 터라 에고누가 고발한 인종차별 폭력에 이탈리아 사회는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차기 총리가 유력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더라도 부모가 외국인일 경우 이탈리아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놨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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