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검찰 "자살" 결론…정부, 수사 미흡 인정·재조사 개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멕시코 정부가 21년 전 저명한 인권 변호사 사망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낸 것에 대해 "당시 수사가 미흡했다"며 공식 사과했다.
20일(현지시간) 라호르나다와 엘파이스 등 멕시코 주요 매체에 따르면 정부는 2001년 멕시코시티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디그나 오초아 이 플라시도 변호사 사망 사건을 자살로 매듭지은 것에 대해 유족에게 유감을 표하고, 관련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로 했다.
베라크루즈주 출신의 오초아 변호사는 스물 네 살이던 1988년부터 멕시코시티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공권력으로부터 인권 침해 피해를 받은 주민들 사건을 주로 맡았다.
게레로주 경찰에 의해 17명의 농민이 살해된 '아구아블랑카 대학살', 군인들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한 환경운동가 테오도로 카브레라·로돌포 몬티엘 사건, 군에 체포돼 가혹 행위를 받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크게 얻던 오초아 변호사는 1990년대 말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살해 협박에 시달렸고, 1999년에는 2차례 납치를 당했다. 특히 두 번째 피랍 때는 무장 괴한이 오초아 변호사를 의자에 결박한 뒤 9시간 동안 구타하고 가스총을 쏴 목숨까지 빼앗으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잠시 몸을 피했던 오초아 변호사는 멕시코시티에서 업무를 재개한 지 약 6개월 뒤인 2001년 10월 19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총상을 입은 채 숨졌다.
당시 멕시코 검찰은 군·경 개입 여부, 아구아 블랑카 대학살 가해자 측 연관 가능성, 주변인 원한 관계 등을 놓고 살핀 결과 "특별한 타살 혐의점이 없다"며 오초아 변호사의 극단적 선택이라고 결론 냈다.
그러나 유족을 비롯한 사회단체에서는 수사 결과를 성토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올해 초 미주인권재판소는 "디그나 오초아 변호사 죽음에 대한 조사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판결하며 멕시코에 재조사를 권고했다.
멕시코 정부는 "이 판결에 따르겠다"며 전날 공식적으로 유족 등에게 사과하고 사건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초아 변호사의 동생인 헤수스는 "우리 가족이 21년 동안 겪었던 조롱과 굴욕 끝에 결국 저희 주장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받게 됐다"며 "우리가 옳았다. 제 누나는 살해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멕시코시티 당국은 시내 한 도로 이름을 '디그나 오초아 거리'로 명명하기로 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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