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경색 비상] ①내년 상반기까지 회사채 68조 만기…자금마련 비상

입력 2022-10-23 05:43   수정 2022-10-23 18:51

[자금경색 비상] ①내년 상반기까지 회사채 68조 만기…자금마련 비상
기관, 채권 평가손실에 조기 '장부마감'…시장 경색 가중
"기업 '실탄' 떨어지는 내년이 위기"…업계, 당국 조치 불신



[※편집자 주 = 급격한 금리 상승과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 등이 겹치면서 채권시장의 자금흐름이 위축되는 자금경색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량 공기업의 회사채도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기존 발행분의 차환 발행도 막혀 자금을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금시장에선 지방 건설업체나 중소형 증권사의 도산설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자금시장 문제의 배경과 현황 및 전망, 기업들의 어려움 등을 정리한 기획기사 5건을 작성해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홍유담 기자 = 최근 채권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의 자금줄이 꽉 막히는 이른바 '돈맥경화' 위기가 대두된 가운데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가 68조원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의 시장 경색이 길어질 경우 기업들이 확보해둔 자금이 본격적으로 고갈되는 내년부터 진짜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이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투입 등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지만 실행이 지연되고 있는 데다 시장 분위기는 아직 반신반의다. 일각에서는 저금리 기조 때 금융투자업계 전반에 걸쳐 벌어진 과도한 '빚잔치'가 부메랑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돈줄 막혔는데 만기 몰려온다'…내년 상반기까지 68조3천억
23일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이달 24일부터 오는 12월 말까지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ABS 포함·CP 제외) 규모는 약 13조9천200억원이다.
이어 내년 상반기(1∼6월)에 추가로 54조3천4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해 다음 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의 회사채 만기 규모는 총 68조2천500억원으로 집계됐다.
월별로 보면 이달(24∼31일)과 오는 11·12월에는 각각 4조원대에 그치지만 내년 1월에는 5조원대, 2월에는 8조원대, 4∼6월은 10조∼11조원대로 점증한다.
만기가 돌아오면 자금을 상환하거나 새로 회사채를 발행해 만기 회사채를 갚는 '차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최근 시장은 발행금리 급등과 수요 부진 등으로 회사채 차환 발행이 어려워지는 등 경색이 심화하고 있다.
심지어 최고 신용등급인 AAA급 기업마저 외면당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AAA)는 지난 17일 5%대 이례적인 고금리를 제시하며 4천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으나 1천200억원 어치가 유찰됐고, 같은 날 한국도로공사(AAA)도 1천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으나 아예 전액 유찰됐다.
비교적 우량한 신용등급인 AA+급 JB금융지주[175330]는 최근 2년물, 3년물로 각각 800억원, 200억원 모집에 나섰지만 230억원, 150억원씩만 모이는 데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하이일드 회사채는 더욱 어려운 처지다. BBB+ 등급 한진은 지난 17일 2년물로 300억원 모집에 나섰으나 10억원 확보에 그쳤다.



◇ 기관은 손실 한도 달해 '장부 마감'…실탄 떨어질 내년이 더 문제
현재의 회사채 시장 경색은 기본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추세 속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이다. 통상 회사채는 국채보다 신용도가 낮아 국채보다 더 많은 이자를 줘야 발행이 가능하므로 국채 금리 상승기에는 회사채 금리도 덩달아 오른다.
하지만 여기에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 위기가 대두됐고, 이 와중에 강원도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로 지방자치단체의 신용보강에 대한 신뢰가 뒤흔들려 투자심리가 한껏 더 위축됐다.
회사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할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올해 금리 인상기에 채권 평가손실을 우려, 일찌감치 '북 클로징'(book closing·회계 연도 장부 결산)을 한 것도 시장 경색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화에서 "올해는 증권사와 운용사들이 채권 평가손실 규모가 한도에 도달해 일찌감치 리스크 관리 모드로 돌아섰다"며 "보통은 12월에 북 클로징을 많이 하지만 올해는 지난 9월부터 미리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시장 경색이 장기화하면 기업들이 올해 확보해둔 '자금 실탄'이 바닥 나는 내년부터 위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올해 많은 기업이 금리 인상을 예상하며 지난 1∼2월에 (만기 규모보다 넉넉하게 발행하는) 선발행을 해놨기 때문에 확보해둔 자금으로 연말까지는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문제는 내년 상반기"라며 "가뜩이나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물량은 올해 동기보다 많아지는데 그때까지 회사채 시장 경색이 풀리지 않으면 차환이 버거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 업계, 당국 조치에 반신반의…'저금리 빚잔치' 자승자박 지적도
금융위원회가 지난 20일 1조6천억원의 채안펀드를 투입해 급한 불을 끄기로 했다는 소식에 업계는 일단 안도하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정부 발표에도 시장금리가 하락하지 않는 것을 보면 채안펀드 자금이 바로 시장에 풀릴지에 대해 시장이 회의적인 것 같다"며 "정부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하지만 둘은 상충하는 목표여서 근본적 해법이 나오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저금리 시기에 금융투자업계 전체가 '빚잔치'를 벌였던 것에 대한 쓴소리도 제기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와 은행 등 업계 전반이 저금리 시기에 '최대한 돈을 벌어보자'라는 심산으로 지나치게 '리스크 테이킹'(위험감수)을 했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작은 악재도 폭발력이 큰 시기인 만큼 기업 부채관리가 급하다는 관측도 있다.
이창민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은 통화에서 "지금은 별다른 실체가 없는 재료에도 채권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 과거 위기 때도 어느 한 기업이 부도나면 그 파장이 연쇄적으로 퍼지곤 했다"며 "기업부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ykb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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