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총수 역할 수행…대내외 위기 상황도 고려한 듯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별도의 취임 행사 없이 조용히 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회장은 27일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회장 승진 안건이 의결된 이후 별다른 메시지나 취임식 없이 당초 예정대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했다.
취임 메시지는 25일 부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추도식 이후 사장단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밝힌 소회와 각오를 사내 게시판에 공유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이후 오전 재판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며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라고 소감을 밝힌 것이 전부다.
앞서 고 이건희 회장이 1987년 12월 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취임식을 하고 '제2의 창업'을 선언한 것과 비교된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리더가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직함이 바뀌는데도 별도 행사 없이 조용히 예정된 일정을 수행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 왔다"며 "이미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 활동을 하고 있는데 별도의 취임 관련 메시지나 행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실제로 2014년 이후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하며 삼성을 이끌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도 2018년 5월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이재용 당시 부회장을 지정한 바 있다.
삼성은 이 회장의 주도하에 ▲ 2018년 180조 투자·4만명 채용 발표 ▲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발표 ▲ 올해 미래 먹거리 분야 5년간 450조원 투자·8만명 신규 채용 계획 발표 등을 진행해 왔다.
이미 각종 정부 행사 등에서도 삼성을 대표해 참석하고 메시지를 냈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를 두루 다니며 임직원과 소통하고 회사별 미래 사업을 점검하는 등 오랜 기간 삼성의 총수로서 활동해왔고 전에 없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취임 메시지 등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인 김한조 이사회 의장이 회장 승진 안건을 발의하고, 이를 이사회가 의결한 것은 이 같은 객관적인 상황을 직함에 반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대내외 활동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밖에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 형식에 매달리는 것을 싫어하는 이 회장 개인의 성품 등도 '조용한 취임'의 배경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IT 기업의 사례를 봐도 대부분 별도 행사 없이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취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에서도 2020년 10월 정의선 현대차[005380] 회장이 회장에 취임하며 별도 행사 없이 사내 방송을 통해 글로벌 구성원에게 영상 메시지를 전달했다.
구광모 LG 회장은 2018년 6월 임시주총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된 후 이사회에서 회장 직함을 받았으며, 이사회 인사말로 취임사를 갈음했다.
롯데그룹은 2011년 2월 정기 임원인사 발표 때 신동빈 회장의 회장 취임을 알렸다.
한편 이 회장은 이날 공판 출석을 제외하고 사실상 취임 후 첫 행보로 28일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을 찾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부진한 세트(완성품) 부문을 점검하는 한편 삼성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업의 핵심인 '동행' 철학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 확정된 일정은 없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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