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서울 아파트값이 5개월째 하락하고 거래량까지 급감하는 등 시장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 조치를 잇달아 내놨다.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무주택자와 기존 주택을 처분할 예정인 1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50%로 완화하고, 투기·투기과열지구 내의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해서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보고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중도금 집단대출이 제한되는 기준선을 분양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역별 부동산 규제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조정대상지역 101곳 중 41곳, 투기과열지구 43곳 중 4곳을 해제했는데 다음 달 추가 해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투기과열지구 내 청약당첨자의 기존주택 처분 기한은 기존의 6개월에서 2년으로 연장되고,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도 완화된다.
정부가 이처럼 규제 일변도였던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완화 쪽으로 전환한 것은 경기 둔화, 금리 상승 등의 외부적 요인과 맞물려 주택 시장의 급랭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 주간 낙폭이 10년여 만에 최대를 기록하는 등 22주 연속 약세를 보였다. 올해 1~9월까지 누적 거래량도 9천82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7천306건의 26.3%, 2020년 6만2천888건의 15.6%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거래 절벽이다. 호가나 실거래가가 수억 원 떨어졌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동안 '미친 집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만큼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원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국적으로 아파트값이 평균 50% 올랐다가, 6%가량 내렸다"며 "폭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 집값이 지금보다 40%는 더 떨어져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격렬하게 진행되면 실물 경제는 물론 금융 부문까지 부실화하는 등 국가 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실수요자들의 애먼 피해도 걱정이다. 따라서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대책을 차례로 내놓는 것은 시의적절한 대응이다. 집값 급등기에 투기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가 불가피했던 것처럼 집값이 하향 곡선을 긋는 지금은 당연히 시장 기능을 정상화해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향은 맞게 잡았으나 속도는 조절할 필요가 있다. 집값이 다시 폭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하지만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너무 급히 풀면 자칫 투기 심리가 되살아날 우려가 있다. 특히 매번 집값 불안의 불쏘시개가 되는 서울의 고가 아파트나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규제 완화는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몇 년 전 책임 있는 고위 공직자가 "모든 국민이 강남 가서 살 이유가 없다"고 말해 상처 난 민심을 헤집은 적이 있다. 거래는 '그들만의 리그'인지 몰라도 그 영향은 모든 국민의 주거 안정에 미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무엇보다 집값 대책은 민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다수 서민에게는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규제 완화가 딴 세상 얘기이다. 이들이 성실하게 일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좀 더 피부와 와닿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또 단발성 조치만 조각조각 나열할 게 아니라 윤석열 정부 5년의 부동산 정책의 비전과 목표, 그리고 방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담대하고 포괄적인 청사진도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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