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아직도 현장에 있는 듯'…트라우마 호소 많아"

입력 2022-11-02 06:13   수정 2022-11-02 09:15

[이태원 참사] "'아직도 현장에 있는 듯'…트라우마 호소 많아"
트라우마, 뇌에 생물학적 반응도 유발…"일상유지·심리안정 노력 중요"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이태원 참사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이틀이 지난 31일부터 극심한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며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서 사고 상황을 목격한 경우가 다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일부는 현장에 없었는데도 사고 영상이나 뉴스 등을 과도하게 접한 이후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는 게 관련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다양한 트라우마 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사고 현장에서 생존한 환자는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아직도 현장에 자신이 계속 있는 듯한 '재경험'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밖에도 '과각성'(모든 자극에 대해 과민해진 상태), '회피'(무감각) 등의 증상이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증상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저절로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정 전문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단지 심리적인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뇌에서 생물학적인 변화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국립보건원(NIH) 연구팀이 2006년에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트라우마는 뇌의 3가지 영역(편도체, 해마, 전두엽 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영역은 모두 스트레스 관리와 관련돼 있는데,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뇌가 과잉 경계 상태를 유지하고 감정 및 충동을 억제하는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에게 외상을 상기시키는 자극을 주자 감정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마치 처음으로 그 외상을 경험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했다.
또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구별하는 동시에 기억을 저장하고 검색하는 역할을 하는 해마는 부피가 줄어들면서 실제 외상 사건과 기억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고, 외상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들을 위협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두엽의 앞부분인 전전두엽 피질의 경우 외부 자극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뇌의 통제력을 관장하지만,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이 기능이 억제돼 두려움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따라서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자연스러운 뇌의 반응으로 여기고 적절한 치료와 올바른 대처에 힘써야 한다는 게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오강섭 이사장(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경험과 작은 변화를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회복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면서 "처음엔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내하고 연습한다면 언젠가는 트라우마를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오 이사장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그동안 해왔던 수면, 식사, 운동 등의 일상을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일상을 유지하면서 그 당시 얼마나 무서웠는지 등을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심호흡과 근육 이완, 스스로 자기 몸을 감싸 안는 나비 포옹법 등을 적용하면 더욱 좋다"면서 "만약 이런 노력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bi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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