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바클리스, 도이체방크, 씨티그룹 등 세계적 투자은행(IB)들이 환헤지 상품을 판매했다가 수천억원대 손해를 봤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텐센트의 대주주인 네덜란드 기업 프로수스는 지난해 8월 인도의 온라인 결제 플랫폼 빌데스크를 3천450억 루피(당시 약 47억 달러)를 주고 인수하려 했다.
프로수스는 인도 루피화 환율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인수 체결을 앞두고 환율을 고정하는 환헤지 파생상품 계약을 이 세 은행과 맺었다.
프로수스는 만약 빌데스크 인수가 성사되지 않으면 수수료 없이 이 헤지를 없앨 수 있는 선택권도 있었다.
환헤지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환율을 현재 시점에 미리 고정하는 것으로, 국제적 인수·합병(M&A) 거래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만약 인수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환헤지 파생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이 손해를 입을 수 있다.
프로수스의 빌데스크 인수는 지난달 무산됐고, 결국 세 은행은 루피 가치 하락에 따라 큰 손실을 보게 됐다.
이 기간 루피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약 10% 떨어졌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각 은행은 프로수스에 10억달러(약 1조4천200억원) 또는 그 이상의 환헤지를 제공했으나, 프로수스의 인수가 어그러지면서 손해로 돌아왔다.
경기가 좋을 때는 수수료 수입을 많이 가져다주지만, 그 반대 상황에서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환헤지 상품에 은행들이 허를 찔린 것이다.
바클리스는 1억달러(약 1천421억원), 도이체방크는 9천만달러(약 1천279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고 씨티그룹의 손실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은행들의 손해 규모는 그들의 매출과 이익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비율이라 3분기 실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이번이 투자은행이 M&A와 관련해 손해를 본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지난 9월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시트릭스를 인수하기 위한 레버리지 거래로 투자은행들이 6억 달러(약 8천500억원)가 넘는 규모의 손실을 봤다.
또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바클리스는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레버리지론 등의 방식으로 빌려주기로 했는데, 지금과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은행들이 130억달러(약 18조5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바클리스는 지난해에도 사모펀드 어드벤트 인터내셔널과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가 스웨덴의 생명공학 회사인 '스웨디시 오펀 바이오비트럼'(Sobi)을 인수하려 할 때 환헤지 파생상품을 판매했다가 1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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