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통한 민주화라니"…독일 친중행보에 '순진하다' 혹평

입력 2022-11-03 12:08  

"무역 통한 민주화라니"…독일 친중행보에 '순진하다' 혹평
숄츠, 재계 이끌고 4일 방중…신냉전 속 서방우려 고조
"독일 대중국 전략 자체가 재계 이익에 맞춰 형성"
독일 내에도 비판론…미국, 중국 항구지분 들어 견제구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확정지은 직후에 대규모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찾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행보에 뒷말이 무성하다.
보통 일개 국가 정상의 일상적인 해외 방문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는 일은 드물지만 오는 4일로 예정된 숄츠 총리의 방중에는 독일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숄츠 총리가 이끄는 이번 방중 사절단에는 제약회사 머크, 기술회사 지멘스, 유럽 최대 자동차회사 폭스바겐, 거대 화학회사 바스프 등 독일 우량기업 경영진 12명이 포함됐다.
◇ "독일 대중국 전략 자체가 재계이익 맞춰 형성"
일단 이 같은 겉모습에서 방중 목적과 독일이 처한 현실이 잘 드러난다는 평가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과 관계 단절을 이상하게 꺼리는 독일 재계' 제하 기사에서 숄츠 총리가 국내외 반발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방중을 강행하는 것에는 지난 20년 간 재개의 이익에 맞춰 독일의 대중 전략이 형성돼 다른 우려 요인들이 끼어들 틈이 없는 현실이 투영돼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독일과 중국은 실제로 매우 긴밀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은 작년까지 6년 연속 독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양국의 작년 교역 규모는 총 2천450억 유로(약 342조원)에 달해 2005년에 비해 5배 성장했다.
독일은 특히 중국에 태양광 패널, 반도체, 희귀 광물 등의 수입을 의존하고 있다. 양국 간 무역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독일 일자리도 100만개가 넘고, 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자리 수는 수백만 개에 달한다.
대중 무역에 대한 이 같은 의존도는 비단 독일만의 특별한 문제는 아니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독일 산업계의 중국 시장 노출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 추정치에 따르면, 기업 가치 측면에서 기업가치 10위까지의 독일 상장사 가운데 무려 9개가 수익의 10분의 1을 중국에서 얻는 반면, 미국에서는 10대 상장사 가운데 2곳만이 이에 해당했다.
아울러, 독일 산업계의 또 다른 특징은 중국 공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다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작년 미국의 대중 직접 투자는 전체 해외 직접 투자액의 2%에 그친 만면, 독일은 14%를 차지했다.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에 따르면, 지난 4년 동안 유럽연합(EU)의 대중 투자 총액 가운데 3분의 1이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3사와 화학회사 바스프에서 나왔다.
올 상반기 6개월 동안 독일 회사들의 중국 직접 투자액은 100억 유로(약 14조원)에 달해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독일 회사들의 대중 직접 투자는 더 강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양국의 이 같은 긴밀한 경제관계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달 하순 독일 정부가 연립정부의 장관 6명과 정보기관 수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 최대 항만인 함부르크 항만에 중국 국영 해운사 중국원양해운(코스코·COSCO) 지분 참여를 결국 허용한 것은 단적인 예로 꼽힌다.
지분참여 규모를 계획했던 35%에서 25% 미만으로 제한하긴 했지만 숄츠 총리는 경제·국방·외교부를 포함해 6개 부처가 반대에도 불구, 중국에 빗장을 열었다.

◇ 미 벌써 '견제구'…"국제흐름에 고속 역주행" 독일내 비판도
이와 관련, 독일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독일 정부에 코스코의 참여 지분을 제한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숄츠 총리 방중을 앞두고 드러난 미국의 이 같은 행동은 유럽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대중 서방 전선 균열을 우려한 미국이 숄츠 총리의 친중 행보를 견제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은 이번 방문은 중국의 개혁개방 뒤 독일이 경제교류를 통한 우호증진 차원에서 지속해온 연례행사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서방은 독일 탓에 중국에 맞서는 서방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독일의 태도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 때리기'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대중 전략과는 엇박자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숄츠 독일 총리의 방중을 앞두고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이 지난 1일 노선 변경을 요구하는 등 독일의 대중 정책은 내부에서도 도전을 받고 있기도 하다.
베어복 장관은 "독일 정부는 새로운 대중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의 정치 시스템이 최근 수년간 전면적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우리 대중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며 "(숄츠 총리는)중국에서 공정한 경쟁 조건과 인권 문제, 국제법의 존중이 우리 국제협력의 기본전제조건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싱크탱크 독일경제연구소의 유르겐 마테스는 독일은 국제사회의 흐름과는 반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전속력을 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타임스도 최근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라고 숄츠 총리의 행보를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은 러시아나 옛 소련과 그랬듯 전제적인 정권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와 긴밀한 무역 관계를 맺을 경우 정치적 변화가 촉진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무역을 통한 변화'에 대한 이러한 기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진핑 주석의 권위주의적 태세 전환과 함께 소멸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방과 중국 사이에 지정학적 긴장이 사라지고, 중국 산업 토착화에 거침이 없는 시진핑 주석과 같은 전제적인 지도자가 서방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중국과 모든 사업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고,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만, 사업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무분별한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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