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민간주도 연금제' 폐기 결정…고용주도 부담 의무화

입력 2022-11-04 04:34  

칠레 '민간주도 연금제' 폐기 결정…고용주도 부담 의무화
정부, 개혁안 발표…증세안과 맞물려 의회 통과는 미지수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남미 칠레 정부가 불평등의 상징처럼 여겨져오던, 40여년 묵은 연금 제도 개혁에 나섰다.
3일(현지시간) 라테르세라와 엘메르쿠리오 등 칠레 주요 일간에 따르면 가브리엘 보리치(36) 대통령은 전날 저녁 전국 주요 방송과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금제도 개혁안을 공식 발표했다.
핵심은 지금처럼 근로자만 단독으로 연금액을 의무 납부하는 대신 국가와 고용주도 근로자 급여 등에 비례해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주의 경우 점진적으로 근로자 총급여액의 6%까지 납부하도록 비중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민간 회사가 연금기금을 독자적으로 관리·운용·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별도의 공공 또는 자율 관리 주체를 설립하는 '혼합 방식'을 채택하는 한편 연금 지원 업무는 정부에서 관여하기로 했다.
보리치 대통령은 "이 개혁은 국가와 고용주, 근로자의 공동 기여를 바탕으로 한 사회 보장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며 비판 대상인 민간 연금기금 관리자의 독점적 지위를 없애고 공공 관리자를 신설할 것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칠레는 지난 1981년 거센 신자유주의 바람 속에 연금 제도를 민영화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민간 연금기금 운용회사인 'AFP'(Administradoras de Fondos Previsionales)가 근로자의 연금을 관리하며 투자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근로자는 매월 자신의 월급 중 10%가량을 기금으로 의무 납부하도록 하는 체계였다.
보유자산 증가와 정부 부채 감소 등으로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 잡는 듯했던 이 시스템은 그러나 저소득층이나 실업자 등 정작 연금 혜택이 있어야 하는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입 기간을 충족하지 못해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마저 발생했다.



반면 고소득층의 노후소득은 충분히 보장하는 구조여서, 시간이 갈수록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주범으로 꼽히게 됐다.
2008년께 한 차례 손질했지만, 대중교통을 비롯한 각종 공공요금 인상과 맞물려 별다른 효과는 보지 못했다.
이후 연금을 비롯해 사회 불평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은 2019년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을 도화선으로 대규모 시위로 폭발했다.
정부는 광범위한 사회 보장 등을 개헌안에까지 담으려 했으나, 지난 9월 국민투표 부결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보리치 대통령은 "현재 연금 수령자 72%는 최저 임금 미만을 받고 있다"며 "퇴직자 4명 중 1명의 경우엔 빈곤선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FP 프로그램은 이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혁안에는 또 가사와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도 연금 대상자에 포함됐다. 기대수명과 관계없이 연령에 맞춰 남녀 동일하게 연금액을 책정하는 계획도 담겼다.
다만 최종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연금 개혁안은 부자 증세 등 정부의 세제 개편안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데, 의회 다수당인 야당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중남미 매체 라나시온은 경제학자 말을 인용해 "의회가 이를 승인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아마도 꽤 큰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walde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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