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1천명 태운 구조선 3척 일주일 넘게 바다 떠돌아
독일 구호 요청에 이탈리아 정부 "구하고 싶으면 직접 나서라"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입항할 곳을 찾지 못해 지중해 중부를 일주일 넘게 떠돌고 있는 이주민 구조선을 둘러싸고 이탈리아와 독일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루카 치리아니 의회관계 담당 장관은 이날 국영방송 라이(Rai) 3과 인터뷰에서 "독일이 이탈리아의 일을 결정할 수 없다"며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면 독일이 직접 나서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가 이탈리아 정부에 이주민 구조선 입항을 요청한 상황에서 치리아니 장관이 이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독일이 이주민을 데려가라고 반격한 것이다.
주이탈리아 독일 대사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자국 선적인 휴머니티 1에 탑승한 이민자 중에 상당수가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우리는 이탈리아 정부에 이들을 빨리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탈리아 정부는 도합 1천명에 가까운 이주민을 태운 인도주의단체 구조선 3척의 입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독일 선적인 휴머니티 1(179명), 노르웨이 선적인 지오 바렌츠(572명)와 오션 바이킹(234명)은 지난달 22일부터 지중해에서 보트를 타고 표류하던 이주민 총 985명을 구조했으나 이탈리아와 몰타가 모두 입항을 거절해 일주일 넘게 해상을 떠돌고 있다.
이주민 구조를 이끈 인도주의단체들은 해상 체류가 장기화하면서 선내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며 이탈리아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항구를 열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은 최근 출범한 이탈리아 극우 정권이 그동안 천명해 온 강경 이민 정책이 말로만 그치지 않을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조르자 멜로니 신임 이탈리아 총리는 과거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고 (지중해에서) 그들을 구조하는 선박들을 침몰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멜로니 총리는 총선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과 한 인터뷰에선 "비정부기구(NGO) 선박에 독일 국기가 걸려 있다면 독일이 처리해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그 선박은 해적선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독일 국적 선박의 지휘 아래 이주민들이 구조된 이상 이들은 독일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테오 피안테도시 내무장관도 전날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와 조율하지 않은 이주민 구조선의 입항을 허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역시 "노르웨이 국기를 단 선박은 노르웨이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올해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상륙한 이주민은 8만5천991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만3천825명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이탈리아 정부가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자 오션 바이킹을 운영하는 프랑스 해상 구호단체 SOS 메디테라네는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SOS 메디테라네 대표인 소피 보우는 AFP 통신에 "우리는 프랑스에 항구를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단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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