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최우선순위는 국경 수호, 난민선 보낸 국가들이 해결해야"
난민 구조선 4척, 이주민 1천75명으로 늘어…"오늘밤 6m 파도와 폭풍우"
압박 나선 프랑스 "이탈리아는 국제법 존중할 것"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받아주는 나라가 없어 지중해를 떠도는 이주민들을 먼저 구한 뒤 분산 수용을 논의하자는 유럽연합(EU)의 제안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신임 총리가 단칼에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 '라스탐파'는 멜로니 총리가 전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만났을 때 이주민 구조선 문제가 여러 이슈 가운데 하나로 논의됐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멜로니 총리에게 먼저 이주민들의 하선을 허용한 뒤 자발적 난민 수용 의사를 밝힌 국가들과 함께 배분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멜로니 총리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의 입장은 바뀌었다"며 "우리에게 최우선 순위는 배분이 아니라 국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그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부터 배타적인 이민 정책을 주장했다.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 쪽 해상을 봉쇄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탈리아가 대규모 이민자를 태운 난민 구조선의 입항을 거부하는 사이, 시칠리아섬 인근 해상에서 입항을 요청하는 구조선은 4척으로 늘어났다.
독일 선적인 휴머니티 1, 노르웨이 선적인 지오 바렌츠와 오션 바이킹 등 기존의 3척에 더해 또 하나의 독일 선적인 리틀 라이즈 어버브가 가세한 것이다.
리틀 라이즈 어버브에는 전날 구조된 95명이 타고 있다. 이 중에는 신생아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난민 구조선 4척은 지중해 중부에서 보트를 타고 표류하던 이주민 1천75명을 구조했으나 이탈리아와 몰타가 모두 입항을 거부해 길게는 2주 가까이 바다에 발이 묶인 신세다.
EU는 해결책으로 이탈리아가 먼저 이주민들을 수용한 뒤 지난 6월 자발적 난민 수용에 합의한 21개국과 할당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이탈리아는 이 방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올해 들어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상륙한 이주민 8만5천991명 가운데 프랑스와 독일로 분산 수용된 이주민이 각각 38명, 74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독일과 노르웨이 국적 선박의 지휘 아래 이주민들이 구조된 이상 독일, 노르웨이가 책임지라고 압박에 나섰다.
그러자 주로마 노르웨이 대사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노르웨이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며 선을 긋고서 "그런 문제는 인근 연안 국가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이날 자국 방송 BFM TV와 인터뷰에서 "이탈리아가 인도주의 선박을 받아들이면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이주민 일부를 수용하겠다"며 "이탈리아가 혼자 모든 짐을 떠맡도록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르마냉 장관은 그러면서 "국제법은 명확하다. 바다에서 조난한 사람들을 구조한 구조선은 가장 안전하고 가까운 항구에 입항할 권리가 있다"며 "이탈리아는 국제법을 존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가 난민 구조선 입항을 허용하라고 압박에 나섰지만 멜로니 총리가 순순히 응할지는 미지수다.
멜로니 총리는 인근 해역을 지나다가 우연히 구조한 것이라면 몰라도 난민 구조선은 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사이를 수시로 오가고 있다면서 난민 구조선이 이주민을 이탈리아로 실어나르는 '셔틀버스'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이탈리아 정부가 최대한 구조를 늦추며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탈리아와 유럽이 바다에 고립된 이주민들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라스탐파'는 "오늘 밤 최대 6m의 높은 파도와 폭풍우가 예보됐다"며 "구조선에 탄 이주민들의 건강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집권 전부터 반이민 정책을 예고한 멜로니 총리가 타협 없이 강경 기조를 이어감에 따라 이주민 구조선 고립 사태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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