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편으로 연해주로 이송…유족들, 마중 나온 친척 품에 안겨 눈물
현지서 장례 돕기 위한 모금 활동 '온정의 손길'도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이태원 압사 참사로 목숨을 잃은 러시아 국적 고려인 여성 2명이 5일 싸늘한 주검으로 고향인 러시아 연해주에 돌아왔다.
이번 참사로 숨진 러시아 국적 희생자 4명 가운데 연해주 출신 20대 고려인인 율리아나 박씨와 옥사나 김씨 등 2명의 시신은 이날 오후 5시께(현지시간) 카페리 이스턴드림호를 통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운구됐다.
율리아나 박의 아버지와 옥사나 김의 친언니, 사촌 언니 등 유가족 3명도 전날 오후 강원도 동해항에서 출발한 이스턴드림호에 함께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왔다.
블라디보스토크항 도착 후 유가족들은 제일 먼저 배에서 내렸으며, 이내 러시아 측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여객터미널 1층 보안 구역으로 들어갔다.
유족들은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 보안 구역 내 대기실에 줄곧 머물렀던 까닭에 현장에서 직접 그들의 심경을 들을 수는 없었다.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유족들은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대기실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하병규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이 자리에서 거듭 애도를 표하며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을 건네자, 율리아나 박의 아버지는 "감사하다. 현재로서는 별도의 도움을 요청할 것이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 들어온 옥사나 김의 유가족 2명은 자신들을 마중하러 나온 현지 친척 2명을 만나자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고, 친척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배가 항구에 도착하기 전 기자도 잠깐 접촉할 수 있었던 옥사나 김의 친척들은 말을 아꼈지만, 심경을 묻는 말에는 "마음이 매우 무겁다"며 "너무나 슬프고 (옥사나가) 그립다"고 했다.
연해주에서 생활하고 있는 율리아나 박의 어머니는 현재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이날 현장에 나오지 못했다.
배 뒤편 화물칸에 있던 희생자 2명의 시신이 든 관을 실은 컨테이너 한쪽 면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문구를 적은 검은색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스턴드림호를 운영하는 두원상선 측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까닭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려 직접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배에서 관을 내리는 작업은 이날 오후 8시께 완료됐으며, 희생자들은 운구 차량에 실려 고향인 나홋카와 스파스크달니 등 2곳으로 각각 옮겨졌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고려인 여성 2명은 생전 한국을 많이 좋아한 젊은이들이었다.
2019년 러시아를 떠나 한국에 먼저 정착한 아버지를 따라 1년여 전 한국에 왔던 율리아나 박은 서울에 있는 러시아 학교에 취업했으며, 유치원에서 영어도 가르쳤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 7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년 전 한국어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한국으로 왔다. 그냥 여기서 살고 싶었다. 이런 결정은 위험하고 즉흥적이었다. 지금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연해주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가 걱정돼 언젠가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이번 참사로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옮겨진 그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옥사나 김도 참사 발생 당시 군중 한가운데 있다가 변을 당했다.
참사 소식이 알려지자 연해주에서는 고려인 희생자 2명의 장례를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도 이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관과 연해주 한인회는 지난 1일부터 모금 활동에 나섰으며, 장례식이 끝나는 오는 7일 유족 측에 성금 25만 루블(560만 원)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러시아인 4명 가운데는 시베리아 케메로보주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여성 2명도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유족들은 한국에서 시신을 화장한 뒤 유골을 담은 상자를 러시아로 가져오는 방법 등으로 장례를 치를 것으로 전해졌다. 시신 운구 등에 대한 구체적 일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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