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움직임 연구하는 디지털과학기술연구소 수석 연구원 인터뷰
"군중 흐름 예측하는 시스템 개발·압사 사고 대비 교육도 필요"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군중이 모였을 때 치명적인 사고를 예방하려면 사전에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니까요. 이것은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군중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쥘리앵 페트레 프랑스 국립디지털과학기술연구소(INRIA) 수석 연구원은 8일(현지시간)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와 같은 비극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페트레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 골목길에서 150명 이상이 숨진 것과 같이 공공장소에 수많은 인파가 모였을 때 사고를 피하려면 군중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진단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군중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다"며 "그렇기 때문에 먼저 관찰하면서 여러 정보를 수집해야 이해를 할 수 있고, 그다음에 어떻게 반응할지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맨눈으로 봤을 때 '즐거워하는 군중'과 '곧 위험에 처할 군중'은 종이 한 장 차이라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사이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내는 게 필요하다. 이것은 그가 이끄는 프로젝트 '크라우드 DNA'의 목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서 300만유로(약 41억원)를 지원받아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폐쇄회로(CC)TV 등으로 공공장소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모였을 때 사고 발생 위험을 사전에 감지해 경고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바로 다음 날인 10월 30일 콩고민주공화국 콘서트장에서 11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이런 사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페트레 연구원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압사 사고를 막으려면 차량 흐름을 예측하는 시스템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특정 장소에 모이는지 예측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앱)에 교통 체증이 있다는 안내가 있으면 그곳을 우회하듯, 많은 인파가 모여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알 수 있다면 그곳을 피해 사고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 앱에는 길에 낙하물이 있을 때 운전자가 신고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를 차용해 보행자가 지도 앱 등에 지나친 인파를 신고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페트레 연구원은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는 것도 사고 예방에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프랑스에서 화재와 테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가르치듯 군중에 갇혔을 때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사전에 안전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2005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생한 에어프랑스 여객기 사고를 참고할 만한 사례 중 하나로 소개했다.
3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여객기는 당시 활주로에 잘못 착륙하는 바람에 불이 났는데, 승객들은 모두 매뉴얼대로 '골든타임'인 90초 안에 여객기에서 탈출했고 그 덕에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페트레 연구원은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비행기를 탈 때마다 안내받듯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지하고 있다면 압사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중이 모였을 때 한편으로는 사고 위험을 관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기 상황에 대비한 교육을 한다면 앞으로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페트레 연구원과 일문일답.
--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것 같은 징후에는 어떤 것이 있나.
▲ 군중의 움직임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관측한다. 주변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꿈틀거릴 수 있는 군중과 사방이 가로막혀 꼼짝도 하지 못할 때의 군중의 움직임에는 차이가 있다.
-- 인파 속에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감지하려면 고가의 장비가 필요할 것 같다.
▲ 꼭 그렇지만은 않다. 카메라가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사양만 갖춰도 된다. 군중의 움직임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측정하는 것이지 개개인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살펴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 더 많은 안전 요원을 배치하면 사고 위험 징후를 더 잘 감지할 수 있을까.
▲ 안전 요원이 많이 있다고 해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요원이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인지할 수 있느냐와 이런 상황에 얼마나 훈련이 돼 있느냐가 중요하다.
--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가.
▲ 특정 장소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게 걱정된다면 두 가지 조치를 해야 한다. 우선 대피 경로를 확보해야 하고, 또 접근을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이태원에서는 군중이 특정한 장소로 모인 게 아니라 도처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다를 수 있다.
-- INRIA가 참여하는 크라우드 DNA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 콘서트홀, 경기장과 같이 인파가 몰리는 공공장소에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군중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등 유럽 4개국 7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연구 기간은 2020년 11월부터 2024년 4월까지다.
--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진행됐는가.
▲ 실험실에서 수많은 실험을 했으며, 실제 콘서트에서도 자료를 수집했다.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전체 여정의 중간쯤 와있으며, 연구 말미에는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시연할 계획도 갖고 있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