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원가도 안 된다'던 1년 반 전 호가에서 또 27.5% 낮춘 가격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중국 국영기업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 지었던 고층 민간임대아파트를 헐값에 매각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이 59층짜리 건물을 사들인 비상장기업 '노스랜드'를 인용해 거래 가격이 5억400만 달러(6천880억 원)였다고 전했다.
이는 로스앤젤레스 내 임대용 단일 부동산의 거래 가격으로는 역대 최고액이지만, 매각 주체인 중국 국영 녹지홀딩스그룹(綠地控股集團)의 미국 자회사가 당초 희망하던 가격보다는 훨씬 낮다고 노스랜드는 설명했다.
녹지홀딩스그룹은 1년 6개월 전에 이 건물의 가격으로 6억9천500만 달러(9천500억 원)를 불렀고 당시에도 이 호가가 조성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으나, 결국 가격을 또 27.5% 낮추고 나서야 거래가 성사됐다.
노스랜드는 이 아파트의 세대당 평균 면적은 1천 제곱피트(92.9㎡, 28.1평) 이상이고 평균 월 임대료가 약 4천500 달러(610만 원)이며, 전체 685세대 중 90% 이상에 입주자가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시아 앳 메트로폴리스'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녹지홀딩스그룹이 로스앤젤레스 도심 컨벤션센터 근처에 '메트로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지은 4개 고층건물 중에서 마지막으로 완공된 것이다.
녹지홀딩스그룹은 2014년에 이 일대 공사에 착공했으며 호텔 1개 건물과 분양아파트 2개 건물을 먼저 지었다. 원래는 마지막 1개 건물도 분양아파트로 하려고 했으나, 완공 전 해인 2019년에 이를 민간임대아파트로 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 회사는 메트로폴리스에 지은 객실 350개 규모 호텔도 매각키로 하고 시장에 내놨다.
WSJ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미국 전역의 임대료 평균이 낮아지는 등, 2년 가까이 달아올랐던 공동주택 시장이 식어가는 분위기다.
노스랜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금리 상승과 임대료 하락이 민간임대아파트 시장에 폭넓게 영향을 끼친데다가,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캘리포니아의 임대료 상승 제한 법규와 원격 근무 등으로 도심 아파트의 가치가 낮아진 점도 시아 앳 메트로폴리스의 가치 하락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에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호텔, 사무용 빌딩과 다른 상업용 부동산에 대규모로 투자했으나, 몇 년 전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의 대외 투자에 따른 자금 유출을 제한하면서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나가려는 중국 기업들이 늘었다.
올해 9월에는 중국 하이난항공(HNA)그룹(海航集團)의 계열사가 파산하면서 뉴욕 맨해튼의 고층 사무실 건물 '245 파크 애비뉴'를 미국의 'SL 그린 리얼티'에 넘겼다.
또 중국범해홀딩스그룹(泛海控股集團)은 미국에서 진행중이던 개발 프로젝트 여러 건을 채권자들에게 넘겨줬다.
한 중국 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던 와이오밍주 잭슨홀 소재 포시즌스 리조트와 레지던스는 최근 3억1천500만 달러(4천300억 원)에 미국 업체인 호스트 호텔 앤드 리조트에 인수됐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이래 중국 기업들의 미국 상업 부동산 순(純)처분 금액은 236억 달러(32조2천억 원)다.
녹지홀딩스그룹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처분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중국 기업들 중 하나다.
녹지홀딩스그룹은 메트로폴리스의 민간임대주택 시아를 매각하고 호텔을 매물로 내놓았을뿐만 아니라, 올해 들어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에 있는 민간 임대아파트 건물 2개를 3억1천500만 달러(4천300억 원)에 이미 매각한 상태다.
이 회사는 본국인 중국에서도 부채 부담과 주택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 탓에 미국 소재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미국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녹지홀딩스그룹 관계자는 "요즘의 도전적인 시장 상황 가운데 시아 앳 메트로폴리스를 전략적으로 처분한 것은 그린랜드USA(녹지홀딩스그룹의 미국 자회사)가 만드는 자산의 품질을 입증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국 프로젝트들 모두를 완공까지 끌고 가겠다는 다짐도 입증한다"고 WSJ에 말했다.
한편 녹지홀딩스그룹은 한국에서는 2015년부터 제주도 서귀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해 '의료 민영화' 논란을 촉발했다.
이 회사는 2017년에는 '녹지국제병원' 건물까지 완공했으나, 인허가 조건 등 문제로 2018년부터 병원 개설이 난항에 부딪히자 제주도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소송 2건을 제기했다. 이 중 1건은 올해 1월 대법원에서 녹지 측이 승소했고, 다른 1건은 녹지 측이 올해 4월 1심에서 승소했다.
다만 녹지 측이 병원 건물을 이미 한국 민간 기업에 넘긴 상태인데다가 중국 본사의 자금흐름에도 문제가 생겨 회사채 채무불이행을 예고한 상태여서 제주도 사업의 향후 전망은 불확실한 상태다.
limhwaso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