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관측엔 "외압 없었다"…회장 인사 앞둔 신한·농협 등도 '긴장'
(서울=연합뉴스) 오주현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0일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징계 취소 소송을 자제하라는 '경고'일 뿐 아니라, 나아가 금융 당국이 손 회장의 연임에도 제동을 건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더구나 금융지주 수장에 대한 이런 당국의 제재 결정과 강경한 태도로 연말·연초 인사를 앞둔 다른 금융그룹들도 대대적 '물갈이' 가능성을 경계하며 바싹 긴장하는 분위기다.
◇ 금감원장 "고의로 벌어진 심각한 소비자 권익 손상" 질타
이 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금융사 글로벌 사업 담당 임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금융위원회가 손 회장에 중징계인 '문책 경고'를 의결한 데 대해 "과거 소송(DLF 제재 관련 취소 소송) 시절과 달리 지금 같은 경우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아마도 당사자(손 회장)께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앞서 9일 정례회의를 열고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부당권유 등) 등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발견된 위법사항에 대해 퇴직 임원(손 회장) 문책경고 등의 조치를 의결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 경고 이상은 중징계로 분류되며, 금융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된다.
손 회장은 우리은행장이었던 2018년 11월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을 겸직하며 첫 임기를 시작한 이후 2020년 3월 연임에 성공,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날 이 원장의 작심 발언은 우선 손 회장의 제재 취소 소송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손 회장은 앞서 2020년 3월에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문책경고 징계를 받았지만,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회장직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이후 손 회장은 DLF 사태 관련 징계처분 취소소송 1·2심에서 승소했다.
금융계에서는 연임에 도전하는 손 회장이 이번에도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당국이 손 회장의 연임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는 해석도 있다.
이 원장이 "본점에서 구체적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벌어진 심각한 소비자 권익 손상 사건으로 저는 인식하고 있다. 가벼운 사건이라거나 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위원님들은 한 분도 없었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제재 의결 시점도 이런 추측에 힘을 싣고 있다.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손 회장의 연임을 막으려면 12월께 우리금융 임원추천위원회가 손 회장을 회장 후보로 다시 추천하기 전에 제재가 결정돼야 하기 때문에, 의결을 서둘렀다는 추측이다.
다만 이 원장은 정부가 개입한 '낙하산 인사' 시도 가능성을 일축하며 "(이번 제재 결정에) 어떤 외압, 그것이 정치적 외압이건 어떤 것이건 외압은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징계와 관련해 아직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금융은 전날 징계 결정이 나오자 "향후 대응방안과 관련해 현재 확정된 사항이 없으며 관련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금융권 물갈이 신호탄?…신한·농협 등도 '긴장'
금융 당국이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뿐 아니라 취소 소송 가능성에 대해 강한 어조의 경고까지 내놓자, 주요 CEO(최고경영자)들의 임기 만료를 앞둔 다른 금융지주들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금융위가 라임사태 관련 징계를 금감원 제재심 이후 1년 6개월가량 끌어오다 본격적 인사철 직전에 확정한 것이 금융권 CEO 물갈이 시도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 때문에다.
최근 김지완 BNK금융지주[138930] 회장이 자녀 관련 의혹으로 사퇴하고, BNK금융지주 이사회가 CEO 후보군으로 외부인사를 포함할 수 있게 한 것을 두고도 '낙하산 CEO'가 내려올 길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오는 12월 31일까지고,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손태승 회장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내년 3월까지다.
진옥동 신한은행장과 권준학 NH농협은행장의 임기는 오는 12월 말까지, 박성호 하나은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금융노조는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권력자의 측근이나 현장경험 하나 없는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을 금융권 낙하산으로 보내려 한다면 저지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viva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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