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주일미군사령부 부대기에는 미국과 일본의 국기와 후지산, 일본 열도 지도, 도리이(鳥居·신사 입구의 기둥문)와 함께 많은 한국 사람이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는 욱일(旭日) 문양이 있다.
미군은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과 맞서 싸웠는데도 주일미군 부대기에 욱일 문양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일미군사령부는 2016년 9월 새 부대기와 엠블럼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USFJ(주일미군) 로고(엠블럼)에는 미국과 일본의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상징하는 몇 가지 요소(양국 국기 등)가 포함돼 있다"면서 "도리이와 후지산은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널리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욱일 문양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주일미군사령부에 엠블럼에 욱일 문양이 들어간 이유와 함께 한국 국민이 가지는 욱일기 혹은 욱일 문양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 지난 9일 질의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는 상태다.
추정컨대 욱일 문양도 후지산이나 도리이와 마찬가지로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 부대기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주일미군사령부가 새 엠블럼을 공개하기 전부터 주일 미 육군 항공대대와 사세보 해군기지, 요코다 공군기지 등 예하 부대는 엠블럼에 욱일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다.
주일미군 부대가 욱일 문양이 들어간 엠블럼을 부대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이를 욱일기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욱일기는 옛 일본 육군이 채택한 군기가 대표적이다. 정중앙에 위치한 태양을 중심으로 일본 왕실 국화 문양의 이파리 수와 같은 16개 햇살(빨간 줄)이 방사형으로 퍼진 모양이다.
1889년 옛 일본 해군이 채택한 군기도 태양의 위치가 약간 왼쪽에 치우쳐 있지만, 욱일기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언론인 아사히(朝日)신문의 사기(社旗)는 어떨까? 왼쪽 아래로 치우친 태양에 '朝'(아침 조)라는 한자가 쓰여 있고, 이를 중심으로 7개 햇살이 뻗어나간 모양이다. 아사히신문 사기의 경우 애매한 점이 있다.
붉은 태양을 중심으로 햇살이 방사형으로 퍼진 욱일 문양은 1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 따르면 욱일 문양은 일본 무사 가문의 상징으로 오래전부터 규슈(九州) 지역으로 중심으로 애용됐고, 지금도 대어기(大漁旗·풍어를 알리는 깃발)와 출산 및 명절 축하 깃발 등으로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욱일기나 욱일 문양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간부를 역임한 한 재일 동포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상징은 '히노마루'(일장기)인데 왜 (한국에선) 유독 욱일기나 욱일 문양에 대해서만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게양됐던 깃발은 욱일기가 아니라 일장기였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일장기와 욱일기는 어떻게 살아남게 됐을까?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직후 연합군총사령부는 지령으로 일장기의 게양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1949년 1월 더글러스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은 일장기를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1954년 일본 자위대가 창설되고 해상자위대는 욱일기의 일종인 옛 일본 해군의 군기를 이어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는 독일 내에서 사용이 엄격히 금지됐지만, 일장기와 욱일기가 살아남은 배경에는 미군의 이런 결정이 있다.
미국 측은 하켄크로이츠와 일장기는 다르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켄크로이츠는 원래 나치당의 깃발로 나치가 집권한 이후인 1935년 독일 국기로 채택됐다. 그러나 일장기는 1870년(메이지 3년) 태정관(지금의 내각 개념) 포고로 일본의 국기로 공식 결정됐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삼국동맹의 일원이었던 이탈리아의 국기(이탈리아 통일 후 1860년 국기 채택)와 독일군을 상징하는 철십자 문양(프로이센 시절부터 사용)은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미국의 조치가 일본에만 특별히 관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역사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욱일기=하켄크로이츠'라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물론 일본의 조선 침략은 메이지(明治·1868년∼1912년) 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점 등에서 한국 국민의 대일(對日) 정서는 다르다.
특히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 등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일본 우익단체의 혐한 시위에 욱일기가 등장하는 장면 등이 욱일기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
지난 6일 일본 해상자위대가 개최한 국제관함식에 참석한 한국 해군 함정 승조원들이 해상자위대기(욱일기의 일종)가 게양된 좌승함을 향해 경례하는 모습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욱일기에 대한 불편한 감정 때문에 한미일 및 한일 안보 협력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할까?
앞서 2018년 11월 한국 해군 주최 국제관함식에 해상자위대도 초청됐지만, 욱일기 논란 끝에 해상자위대 함정은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욱일기에 대한 거부감을 고려해 관함식의 하이라이트인 해상 사열 때 해상자위대기를 게양하지 말 것을 여러 경로로 요구했지만, 일본 측은 자국 법규에 따라 해상자위대 함정은 해상자위대기를 게양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이를 거부했다.
이후 한일 안보 협력은 한일관계 악화와 맞물려 크게 후퇴한 바 있다.
ho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