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혁 "시련을 음악으로 녹여냈다…앞으로 더 발전하라는 상"

입력 2022-11-14 10:13  

[인터뷰] 이혁 "시련을 음악으로 녹여냈다…앞으로 더 발전하라는 상"
"인간의 모든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꾼 되고 싶다"
우크라 침공 후 모스크바 떠나…"심적으로 힘들었다, 친구들 너무 걱정되고 마음 아파"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서 일본 피아니스트와 공동 1위 '영예'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모스크바를 떠나야했을 때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오랜 기간 모스크바에 있었다 보니까…. 제가 겪은 나름의 시련을 음악으로 잘 녹여내려고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기쁩니다."
2014년부터 러시아에서 유학한 피아니스트 이혁(22)은 지난 4월만 해도 불편한 마음을 안고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휴학계를 내야 했다. 하지만 반년 만에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1위를 수상하며 큰 위로를 얻었다.
13일(현지시간) 밤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롱티보 콩쿠르 피아노 부문 시상식을 겸한 갈라 무대가 끝나고 이혁을 만났다. 이혁은 이날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난 자리에서 신상의 변화로 콩쿠르 준비가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고 묻자 "처음에는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지만, 지금은 많이 정돈됐다"고 답했다.



올해 1월부터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시작한 이혁은 애초 2016년 들어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과 에콜 노르말 음악원을 병행할 생각이었으나, 러시아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이혁은 러시아에 적을 두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서 공연이 잡혀있기 때문에 여행을 자주 다녀야 하는 와중에 전쟁으로 러시아를 오가는 비행편이 끊기다 보니 불가피하게 러시아에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 무엇보다도 처음에는 제 친구들이 너무 걱정됐어요. 러시아에도 친구들이 많이 있고, 우크라이나에도 친구들이 많이 있거든요.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전쟁 초기에 방공호에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이날 롱티보 콩쿠르 피아노 부문 결선에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한 이혁은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을 연주한 일본 피아니스트 마사야 카메이(20)와 함께 공동 1등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공동 1위라는 흔치 않은 결과를 받아안고 "진짜 믿기지 않는다", "실감이 안 난다"는 말을 반복하던 이혁은 "준비한 모든 곡을 들려주고 나서는 다 내려놓은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상을 받았다"며 해맑게 웃었다.



이혁은 "앞으로 더 발전하라는 상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정진해 나가겠다"며 "오늘 콩쿠르에서 1등을 하든, 내일 콩쿠르에서 2등, 3등을 하든 달라지는 것은 없고 그저 음악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3시에 선보인 결선 무대와 상을 받고 나서 오후 10시에 선보인 갈라 무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후자에 아무래도 더 기쁜 마음이었지만, 곡 자체가 워낙 어둡고 비극적이다 보니 다시 한번 음악에 빠져드는 자세로 임했다"고 답했다.
시상식에서 1위, 2위 호명만을 앞두고 마사야 카메이와 함께 나란히 무대 앞쪽으로 불려 나갔을 때만 해도 "어떤 상을 주더라도 감사히 받겠다는 마음"이었다던 그는 두 사람이 함께 1위를 했다는 설명을 듣고는 "얼떨떨했다"고 회상했다.
올해 12월 2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자선공연을 하는 이혁은 한국에서 관객들을 만날 다른 기회는 아직 계획하고 있지 않다.
"콩쿠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이혁에게 그렇다면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답변을 곱씹던 그는 "음악을 통해서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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