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앨버트홀 BBC 프롬스 개막무대 생중계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 부쩍 늘어"
콩쿠르 우승 뒤 오디션 없이 '영 아티스트'로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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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에서 활동하는 테너 김정훈(34)씨가 세계 3대 오페라극장으로 꼽히는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라 보엠'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는 꿈을 이루었다.
김정훈씨는 런던 코번트가든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10월 28일과 11월 13일 두 차례 푸치니의 3대 오페라인 '라 보엠'의 시인 '로돌포' 역으로 공연을 했다.
'라 보엠'은 1830년대 프랑스 파리 변두리에서 펼쳐지는 가난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담은 작품으로, '로돌포'는 여주인공 미미의 상대역이다.
김정훈씨는 "'라 보엠'의 '로돌포'는 테너에겐 상징적인 역할이라 감격스럽다"라며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등 테너 3인방을 포함해 유명 테너들이 모두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이 역할로 공연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테너들에게 '라 보엠'으로 주요 무대에 오르는 것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입문 과정이기도 하다"라며 "한국 성악가들이 세계 최고 수준 극장에서 '로돌포'를 맡은 사례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한국 성악가들이 세계 주요 콩쿠르를 휩쓸고 있지만 문턱이 높은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주연을 맡는 경우도 드물다.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선 1991년 조수미씨가 공연을 했고 최근엔 베이스 심인성씨가 지난달 '아이다'에서 이집트의 왕으로 출연했으며 테너 이용훈씨는 내년 초에 '투란도트' 주인공 '칼라프'로 무대에 선다.
'라 보엠'의 '로돌포'역은 2008년에 테너 김우경씨가 4회 공연을 한 기록이 있다.
김정훈씨는 올해 7월엔 로열앨버트홀에서 개최된 세계적 클래식 음악축제인 BBC 프롬스의 개막무대에 베이스 심기환씨와 함께 서기도 했다. 기존 출연자가 코로나19 감염으로 빠지면서 갑자기 생긴 기회였다.
그는 "BBC로 생중계된 영향인지 영국인들이 길에서 알아보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정훈씨는 2015년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으로 로열오페라하우스와 인연을 맺었다.
젊은 아티스트들의 성장을 위해 2년간 교육하고 무대에 설 기회를 주는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2000년에 시작됐다.
김정훈씨는 "매년 700명쯤 지원해서 5명이 뽑히는데 전무후무하게 오디션 없이 특채로 선발됐다"며 "그 이후론 기획사에 소속돼서 로열오페라하우스 뿐 아니라 유럽 다른 극장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부터 '맥베스'의 '맥더프' 역 등 주요 역할을 했고 주인공은 당시세계 초연 작품 '니시다의 천사'(L'ange de Nisida)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라고 덧붙였다.
그는 서울대 성악과 4학년 재학 중이던 2012년 이탈리아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아시안 최초이자 최연소로 우승했고 2014년에 제50회 프랑스 툴루즈 콩쿠르에서 역대 두번째로 만장일치로 우승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성악을 시작한 것은 스무살이 돼서였다.
그는 "변성기가 늦게 와서 성악을 전공했던 어머니조차 재능을 보지 못했다"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던 이과생이었는데 19살에 목소리가 바뀌면서 진로를 변경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부터 국제 콩쿠르를 다녔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의기소침했는데 어머니와 지금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가 많이 응원해줘서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콩쿠르 우승 뒤에선 서울시향, 지휘자 정명훈 등과도 여러 차례 함께 무대에 섰다.
같은 대학에서 만난 부인 소프라노 이혜지씨도 로열오페라하우스 영아티스트로 합격해서 현재 런던에서 활동 중이다.
김정훈씨는 내년 2월엔 런던 사우스뱅크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파우스트의 겁벌'을 무대에 올린다. 주인공 '파우스트'역이다.
그는 앞으론 유럽을 넘어 미국 진출도 꿈꾸고 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극장 관계자가 기획사 초청으로 와서 전날 공연을 보고 갔다"고 전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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