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에 맞선 韓안보 강화가 中안보 해쳐선 안된다는 의미 담은 듯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첨예한 미중 전략경쟁 구도 속에 대미 접근을 강화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견제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도 했다.
시 주석은 "중·한은 이사할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자 분리할 수 없는 파트너"라며 올해 수교 30주년인 한중관계를 회고하고, 양국 협력의 잠재력에 대해 강조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의 가속화 필요성도 거론했다.
이처럼 25분간의 짧은 회담에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협력을 말했지만, 그 속에 '뼈'가 있었다.
시 주석이 "공동으로 국제 자유무역 시스템을 수호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전과 안정, 원활한 흐름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경제 협력을 정치화하고 범(泛) 안보화(안보 개념을 확장해 경제 문제를 자의적으로 안보와 연계)하는 것에는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이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디커플링)하려 하는 행보에 동참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중국이 최근 각국과의 외교 소통 때마다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중국과 반도체 분야에서 깊숙이 연결된 한국 입장에서는 단순한 외교적 '관용구'로 치부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한미 등은 중국 배제의 의미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반도체 공급망 협력대화인 이른바 '칩4(한미일·대만)'에 대해서도 중국은 자국에 대한 디커플링 시도의 프레임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윤 대통령에게 직접 공급망 안정을 한중이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한 것은 결국 한국이 참여를 검토하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 연대체'가 중국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일 수 있어 보인다.
이와 함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정치적 상호 신뢰를 증진해야 한다"는 시 주석의 언급은 안보 면에서 중국의 이익을 해치지 말라는 요구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중국 측 인사들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과 관련, 한중 고위급 사이의 정치적 상호 신뢰 부족이 갈등의 최대 원인이라는 인식을 피력해왔다.
결국 '전략적 소통 강화', '정치적 상호 신뢰 증진' 등은 사드 사태와 같은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소통하고 고위급 간의 신뢰를 키우자는 메시지가 내포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었다.
시 주석의 이 같은 언급이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미국은 전날 열린 미중 정상회담 계기에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 역내 미군 전력을 증강할 수 있음을 시사한 상황이다. 또 중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이른바 '사드 3불(사드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MD·한미일 군사동맹에 불참)·1한(限·사드 운용제한)'은 북한의 추가 핵실험 국면에서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올 수 있다.
결국 향후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에 나설 때 한국이 북핵 대응 차원에서 취하는 조치가 중국의 안보상 이익을 저해하지 않도록 전략적 상호 소통과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시 주석 발언에 내포된 함의일 수 있어 보인다.
어쨌든 이날 두 정상이 온화한 얼굴로 악수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정식 회담의 형식을 취한 것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 한중관계를 원만하게 관리할 상호 필요에 따른 행보로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날 회담을 통해 안보 영역에서 한중 입장 사이의 간극과 잠재적 갈등 요소도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담에서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던 북핵 문제와 관련한 양국 발표의 차이를 보였다.
대통령실 발표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인접국으로서 중국이 더욱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중국 측 회담 결과 발표문에 북핵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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