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조원 규모 재원 확보…에너지 비용 등 가계 지원, 의료·교육 예산 확대
트러스 전 총리 감세안에서 방향 급변…"경기침체 이미 진입"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이 시장 신뢰와 재정 안정성 회복을 위해 에너지 업체 횡재세와 소득세를 더 걷고 공공지출을 축소해서 재원 550억파운드(88조원)를 확보한다.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간) 하원에 출석해서 이와 같은 내용의 예산안을 발표했다.
헌트 장관은 국민 생계비 위기를 해결하고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 목표이며, 이를 위해 안정, 성장, 공공서비스를 중점에 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물가 상승세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언론에선 정부가 550억원 규모 재정 구멍을 메꾸기 위해 2027/28 회계연도 기준으로 증세로 250억파운드, 지출 삭감으로 300억파운드를 재원으로 확보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우선 에너지 업체 이익에 대한 횡재세를 늘린다. 내년부터 발전회사에 이익의 45%에 달하는 횡재세가 새로 임시 부과되고 전기·가스 업체는 횡재세 세율이 25%에서 2028년 3월까지 35%로 올라간다. 횡재세 세수는 내년에 140억파운드로 예상했다.
또 소득세 최고세율(45%) 적용 대상을 연 15만파운드 이상에서 연 12만5천파운드 이상으로 확대하고, 전체적으로 과세 구간을 2028년까지 고정한다. 이렇게 하면 최고세율 과세 대상이 늘어나고 전체적으로도 임금 상승에 따라 소득세를 더 많이 내게 된다.
전기차에도 2025년 4월부터 도로세가 부과된다.
공공 지출은 축소된다. 헌트 장관은 정부부처 지출이 경제 성장률보다 느리게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항목이 이번 지출 축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지출 축소가 대부분 총선 이후인 2025년부터나 시작된다고 전했다.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최소 2%로 유지한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목표 수준이다. 앞서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3%를 공약했다.
가계 에너지 비용 지원은 1년 연장하지만 규모는 축소한다. 에너지 요금 상한을 현재 2천500파운드(표준가구 기준)에서 내년 4월부터 3천파운드로 인상한다.
헌트 장관은 긴축 충격에 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취약 계층을 보호할 것"이라면서 "연민을 가진 정부"라고 말했다.
취약계층에는 에너지 등 생계비 지원을 일부 추가한다.
연금과 복지수당 등은 당초 원칙대로 물가상승률(10%)에 맞춰서 인상된다.
생활임금은 9.5파운드에서 내년 4월부터 10.42파운드로 올라간다.
또 교육·의료·복지 예산은 예상과 달리 확대된다. 국민보건서비스(NHS) 예산은 내년에 33억파운드 늘고 교육에는 연 23억파운드가 2년간 추가 지원된다.
시즈웰 C 원전과 연구개발(R&D) 예산도 유지된다. 헌트 장관은 영국을 제2의 실리콘 밸리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헌트 장관은 영국이 이미 경기침체에 진입했다고 선언하고 세계적으로 전례 없이 어려운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서 예산책임처(OBR)은 영국 경제성장률이 내년에 -1.4%로 지난 3월 전망치(1.8%)보다 크게 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4년 성장률은 1.3%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영국의 경제규모는 2024년 말까지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다.
물가 상승률은 올해 9.1%에서 내년 7.4%로 내려가지만 실업률은 현재 3.6%에서 2024년 4.9%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헌트 장관은 트러스 전 총리와 쿼지 콰텡 전 재무장관의 '미니예산'에 관해서는 성장을 우선시한 것은 옳았지만,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감세는 위험했다고 평가했다.
트러스 전 총리 등은 9월 23일 50년 만에 최대 규모 감세안이 담긴 '미니예산'을 발표했지만 재정전망을 내놓지 않아 신뢰를 잃고 금융시장 대혼란을 초래했다.
이날 금융시장에선 금리와 파운드화 환율이 조금씩 올랐지만 반응이 크진 않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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