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펀드 '착오의한 계약취소' 결정…라임·옵티머스 이어 세 번째
분조위 "회수 불가능 사실 알았다면 가입 안 했을 것"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금융당국이 독일 헤리티지 펀드 판매사 6곳에 투자 원금 전액을 돌려주라고 분쟁조정 결정을 내린 것은 국내 판매사의 책임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기책임 원칙이 적용되는 금융투자상품에 원금 전액을 돌려주라는 분쟁조정 판단이 나온 것은 라임 무역펀드와 옵티머스 펀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운용사는 느슨한 규제를 틈타 거짓 상품을 내놓고, 판매사는 이를 소홀히 검증한 채 일반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피해 규모를 늘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 "당초 불가능한 투자계획 상품 그대로 투자자에 판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분조위) 발표를 보면 신한증권 등 6개사가 판매한 독일 헤리티지 신탁·펀드·파생결합증권(이하 헤리티지 펀드)의 상품 구조는 투자계획만 그럴싸한 사기성 상품을 연상케 한다.
헤리티지 펀드는 독일 내 문화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건물을 매입한 뒤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매각 혹은 분양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제안서상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배분 구조는 다음과 같다.
오래된 부동산을 사서 리모델링 등을 통해 약 5배로 가치를 올린 뒤 분양을 한다. 투자자는 부동산 매입자금의 80%를, 시행사는 20%를 댄다.
분양대금의 30%를 투자자에게 선지급한다. 분양률이 65% 이상이 되면 수익이 나는 구조다.
분양률이 계획(65%)에 미치지 못해도 시행사가 은행 대출로 투자금을 돌려주고, 혹시라도 부도가 나더라도 부동산 담보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분조위는 투자설명서에 담긴 이런 투자금 회수구조가 애초 실현 불가능한 '허구'라고 평가했다.
윤덕진 분쟁조정3국장은 "부동산값이 100원이라고 한다면 투자자 돈은 80원, 시행사 돈은 20원이 들어간다. 그런데 실제로는 시행사가 20원을 안 냈고, 이면 수수료 24.3%도 떼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는 60원도 안 되는 돈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는 분양률 65%가 되더라도 투자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분조위는 "이런 구조에 따라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다면 (분쟁조정) 신청인은 물론 누구라도 이 상품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 라임무역펀드·옵티머스 이어 세 번째 '원금 전액 환급'
분조위가 헤리티지 펀드처럼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법리를 적용해 투자 원금 전액을 돌려주라고 결정한 것은 라임 무역금융펀드와 옵티머스펀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분조위는 2020년 8월 라임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 피해자들의 분쟁조정 신청을 심의한 끝에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에 해당한다며 투자 원금을 모두 돌려주라고 결정했다.
펀드 계약체결 당시 이미 투자원금의 최대 98% 손실이 발생한 정보를 알리지 않아 투자자 착오를 일으켰다는 판단이었다.
분조위는 "판매사는 투자제안서 내용을 그대로 설명함으로써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고 결정 사유를 설명했다.
옵티머스 사태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이 펀드 가입 권유를 통해 투자자로부터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모은 뒤 투자자들을 속이고 부실기업 채권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본 사건이다.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기 때문에 원금 손실 위험이 없다고 해 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으나, 2020년 6월 이후 환매가 중단돼 884명이 5천84억원의 피해를 봤다.
그러나 옵티머스가 투자제안서에 설명했던 공공기관 매출채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고, 분조위는 이때도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해 투자 원금 전액을 돌려주라고 결정했다.
◇ "허위 투자제안서 그대로 고객에 설명"…당국, 부실방지 대책 수립
전문가들은 환매 중단 사태를 빚은 사모펀드들에서 소비자 피해를 빚은 배경은 자산운용사의 부실 운용 또는 불법 행위, 판매사의 검증 미흡 등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분조위는 이번 헤리티지 펀드에 대해 "계약체결 시점에 상품제안서에 기재된 투자계획대로의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신한증권 등 6개 금융사는 상품제안서 등을 통해 독일 시행사의 사업이력, 신용도 및 재무상태가 우수해 계획한 투자구조대로 사업이 가능하다고 설명,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한 게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일반투자자인 신청인이 독일 시행사의 시행능력 등에 대하여 직접 검증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일반투자자에게 중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운용사가 느슨한 규제를 틈타 거짓 상품을 내놓고, 판매사는 이를 소홀히 검증한 채 일반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피해 규모를 늘린 셈이다.
금융당국은 제2의 라임과 같은 환매 중단 펀드 사태를 막기 위해 펀드 상시 감시 체계를 고도화하고 펀드 관련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등 사모 펀드 시장 감시 체계를 견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사모펀드 환매 연기 사태 재발을 방지하고 펀드 시장의 잠재 리스크 요인을 선제적으로 모니터링·관리할 계획이다.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등 문제가 된 펀드 사태에서 보듯이 자산운용사의 부실 운영이 금융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취임 후 사모펀드 전수 조사와 같이 위험 요인이 내포될 수 있는 부분에 검사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펀드 부실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p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