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탄압 우려 제기…러 하원의장 "서방이 확산하는 어둠에서 보호"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러시아 하원이 24일(현지시간) 9년 전 채택된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 법안을 두고도 설전을 벌였다.
리아노보스티 통신과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이날 해당 법안에 대한 3차 심의 후 표결을 거쳐 참석 의원 397명 전원의 찬성으로 처리했다.
법안은 상원 심의와 대통령 최종 서명 절차를 거쳐 발효되나, 행정적인 요식 절차로 간주되고 있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하원의장은 법안 채택 표결에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전날 이 법안을 비판한 것을 두고 "블링컨에게 투표로서 답하자"며 의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주문했다.
앞서 블링컨 장관은 23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의 성소수자 이슈 선전 금지 강화는 표현의 자유와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또 다른 심각한 타격"이라면서 "러시아 의원들이 법안을 철회하고 모두의 인권과 권위를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볼로딘 의장은 이후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서도 "법안이 우리 아이들과 국가의 미래를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확산시키는 '어둠'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모든 미성년자와 성인을 상대로 한 '비전통적 성적 관계 선전 금지'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2013년 채택된 법률은 미성년자에 대한 동성애 선전을 금지했으나, 이번 개정안은 선전 금지 대상을 모든 러시아 성인으로까지 확대했다.
법안은 인터넷, 미디어, 서적, 동영상, 영화, 광고 등에서 비전통적 성적 관계와 성소수자에 대해 선전하는 것을 금지했다.
'전통적 가족 가치'에 대한 부정을 불법화하고, 미성년자들의 성전환을 부추기는 선전을 금지하는 조항도 담고 있다.
성소수자 주제에 관한 온라인 상의 모든 논의가 차단되고, 성소수자 구호나 상징 등을 포함한 제품 판매도 금지된다.
법률을 위반할 경우 개인은 최대 40만 루블(약 880만 원), 법인은 최대 500만 루블(1억1천만 원)의 벌금을 물게된다.
외국인 위반자는 투옥되거나 추방될 수 있다.
러시아 내 인권운동가들과 성소수자 단체는 새 법률을 성소수자에 대한 추가적 억압 시도라고 비판하면서 동성애자 등에 대한 공격과 탄압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일부 출판업자들과 영화제작자들은 법률 개정이 동성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러시아 고전의 출판과 제작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검열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전통적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에선 여전히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보수적 견해가 우세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최근 연설에서 유럽 내의 동성애와 성전환 권리 주장 운동에 대해 '악마주의'의 문을 여는 움직임 가운데 하나라고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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