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FTX가 국내 거래소 빗썸을 인수했더라면…

입력 2022-11-27 07:00  

[특파원시선] FTX가 국내 거래소 빗썸을 인수했더라면…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먼의 '신화'는 끝났다.
올해 서른 살의 그는 20대 때인 2019년 FTX를 창업해 3년 뒤 이 기업을 320억 달러(약 44조 원)의 가치를 가진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로 키워냈다.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적극적인 기업 인수에 나서며 세운 계열사가 134개, 가히 'FTX 제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를 선언하기 전인 올해 3월에는 머스크와 트위터 공동 인수를 모색하기도 했다.
미국의 지난 대선 캠페인 때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개인 후원자 중 두 번째로 많은 정치 자금을 기부해 주목을 받았다.
올해 5월 테라·루나 사태로 코인 시장이 무너졌을 때는 자금난에 처한 가상화폐 업체에 구제금융을 제공해 업계의 구원투수로도 떠올랐다.
이러한 화려한 이력으로 그는 세계적인 금융회사를 창업한 존 피어폰트 모건에 빗대 '코인계의 JP 모건'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하지만 FTX는 이달 초 계열사 알라메다의 재무구조 부실 의혹이 제기되면서 뱅크런(고객이 자금을 한꺼번에 인출하는 사태) 사태를 겪었고,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결국 델라웨어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320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받던 기업이 일주일 새 '0'이 된 것이다.
피해자만 100만 명. 이 중 담보가 없는 대부분의 이용자는 FTX에 맡겨 놓은 돈을 고스란히 떼일 처지에 놓였다.



뱅크먼-프리드와 FTX는 가상화폐 거래자가 아니라면 잘 몰랐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7월이었다.
국내 2위권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FTX가 붕괴하기 불과 3개월여 전이다.
글로벌 거래소가 국내 업체를 인수할 수 있다는 소식에 시장은 환호했다.
빗썸 측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없다"고 하면서도 FTX와 인수 관련 "협의를 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빗썸의 최대주주인 비덴트 주가는 소식이 전해진 7월 23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상한가(30%)를 기록했다.
그다음 날에도 8% 급등하는 등 단 이틀 만에 40%가 껑충 뛰어올랐다.
빗썸은 이미 2020년 8월부터 대주주 지분 매각을 준비해 왔는데, 지난해 초에는 국내 게임 기업 넥슨도 인수를 검토한 적이 있는 터여서 FTX의 인수는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후 소식은 끊겼다.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거나 결렬됐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곤 3개월여가 흘렀고 FTX는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FTX가 빗썸을 인수하지 않은 것이 국내 시장으로선 '천만다행'이었다.
빗썸은 지난해 말 기준 월 이용자 수가 200만 명을 웃돌고, 지난해 9월까지 고객 예치금은 1조5천억 원에 달한다.



FTX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면서 고객 자금을 비롯해 FTX의 자산은 모두 묶이게 됐는데, 빗썸을 인수했다면 이 또한 마찬가지였을 수 있다.
FTX가 유동성 위기로 이어진 이유 중 하나는 고객 자금의 절반 이상을 계열사에 지원해 준 것으로, 빗썸 자금이 어떻게 이용됐을지 장담할 수 없다.
현재 FTX 붕괴에 따른 피해자는 100만 명으로, 이들은 무담보 채권자여서 대부분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FTX의 현금 잔고는 상위 50명의 채권자에게 진 빚 31억 달러에도 크게 못 미치는 12억 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FTX 자산을 전부 팔아도 우선순위에 있는 채권자들에게도 돌아가지 못한다.
빗썸 또한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200만 명의 이용자들이 수천억 원에서 1조 원이 넘는 돈을 돌려받지 못했을 수 있다.
특히 가상화폐 이용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대∼40대가 큰 타격을 입었을 수 있다.
국내 가상화폐 시장 혼란과 함께 빗썸 자산 처리를 놓고도 미국 법원과 갈등을 빚을 소지도 있었던 셈이다.
FTX가 파산보호 절차를 진행하는 데 있어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법과 빗썸이 있는 국내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충돌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FTX 본사가 있는 바하마 당국이 바하마에 있는 'FTX 디지털 마켓'의 디지털 자산을 압류하면서 미국과 바하마간 FTX 관할권을 둘러싼 다툼 우려가 제기됐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빗썸이 FTX에 인수됐더라면 국내 시장 혼란은 불 보듯 뻔했다. 해외 기업이 들어온다고 무조건 기대하는 섣부른 환호는 금물이다.


taejong7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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