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비리 의혹과 천문학적 손실로 얼룩진 교황청의 영국 런던 고급 부동산 매매 의혹에 연루된 추기경이 재판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전화통화를 몰래 녹음한 사실이 드러났다.
25일(현지시간) AFP 통신과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조반니 안젤로 베추(73·이탈리아) 추기경이 작년 7월 교황과 나눈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입수해 이날 보도했다.
해당 통화는 베추 추기경의 횡령·직권남용·위증교사 등 혐의와 관련한 재판이 시작되기 사흘 전인 지난해 7월 24일 이뤄졌다.
베추 추기경은 아프리카 말리에서 2017년 피랍된 콜롬비아 국적 수녀의 몸값 지급과 관련해 "그 수녀가 풀려나도록 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할 권한을 내게 줬습니까, 아닙니까"라고 교황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몸값을 50만 달러(약 6억7천만원)로 정했고, 테러범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데 더 많은 돈을 주는 건 비도덕적으로 보이는 까닭에 더는 안 된다고 말했다"면서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당신에게 말한 것 같은데 기억합니까"라고 대답을 재촉했다.
베추 추기경은 부동산 매매 관련 비위 외에도 교황청을 위한 비선 외교 활동 명목으로 자칭 '안보 컨설턴트' 체칠리아 마로냐에게 57만5천 유로(약 8억원) 상당의 교황청 자금을 지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CNN은 베추 추기경이 국제테러 관련 전문기업인 영국 잉커먼 그룹에 피랍 수녀 석방을 위한 비용을 지급하려던 것이라면서 교황에게 횡령 혐의로 함께 기소된 마로냐에 대한 자금 지급을 승인했다고 확인해주길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결장 협착증 수술을 받고 퇴원한지 10일째였던 교황은 이런 내용이 '희미하게' 기억난다면서 베추 추기경에게 확인해 주길 원하는 사항을 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말했다.
통화는 베추 추기경의 숙소에서 스피커폰으로 진행됐다. 친척 중 한 명이 녹음한 대화 내용은 24일 진행된 공판에서 증거로 제출됐다.
한때 '교황의 개인 비서'인 국무원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며 교황을 가까이서 보좌한 베추 추기경은 교황청 재정에 1천8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떠안긴 영국 런던 첼시 지역 고급 부동산 매매 비리 사건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사건은 교황청의 방만하고 불투명한 재정 운영 문제를 드러냈으며, 특히 교황의 사목 활동 자금이자 전 세계 분쟁·재해 지역 주민·빈곤층 지원에 쓰이는 베드로 성금이 투자 밑천이 됐다는 점에서 교계 안팎의 비난 여론이 컸다.
베추 추기경은 결국 작년 7월 부동산 매매 브로커를 비롯한 다른 피의자 9명과 재판에 넘겨졌으나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한편, 녹취록에서 언급된 피랍 수녀 글로리아 세실리아 나바레스는 작년 10월 9일 풀려났다. 그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현지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에 납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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