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시위' 확산…상하이, 시위 지역 경계 강화·관영 매체는 모른척
(홍콩·베이징=연합뉴스) 윤고은 한종구 특파원 =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 등에서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수도 베이징에서도 성난 주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28일 소셜미디어와 목격자들에 따르면 일요일인 전날 밤 10시께 베이징 차오양구 량마차오루 인근에 아무런 구호도 적지 않은 A4 용지를 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량마차오루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 각국 대사관이 위치한 곳으로, 각종 호텔과 상업시설 등이 밀집한 지역이다.
영상 속 백지를 든 시민들은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한 뒤 "봉쇄 대신 자유를 원한다"라거나 "문화혁명 2.0을 끝내라"라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며 제로 코로나 철회를 촉구했다.
시민들이 든 백지는 검열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백지 시위는 2020년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 때도 등장한 바 있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경찰이 주변을 봉쇄하자 시민들은 '거짓말 말고 자존심이 필요하다', '문화혁명 말고 개혁이 필요하다', '영수(領袖) 말고 선거권을 요구한다', '노비 말고 공민이 돼야 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이 외친 이 구호는 지난달 13일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약 9㎞가량 떨어진 쓰퉁차오에 내걸렸던 시진핑 국가 주석 비난 현수막의 내용이다.
시 주석이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이유로 경제를 내팽개쳤고, 문화대혁명을 재연하고, 마오쩌둥이 누렸던 영수 자리를 탐하고, 중국인을 노비처럼 부리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다.
당국은 당시 현수막을 게시한 사람을 연행한 뒤 소셜미디어에서 관련 사진과 영상을 차단하고 시위 사진을 공유한 사람들의 계정까지 정지시켰지만, 적지 않은 베이징 시민이 관련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시위대는 또 "상하이 파이팅, 상하이 구금자를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날 상하이에서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을 석방할 것을 촉구했다.
트위터 영상에는 주변을 지나가던 자동차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를 응원하는 모습도 담겼다.
경찰은 자정이 지나자 시위대를 연행하기 시작해 이날 오전 3시 30분께 시위대를 완전히 해산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명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백지를 들고 불만을 표시했고 현장에 공안이 대거 출동했다"고 전했고, AFP·로이터 통신도 "베이징에서 사람들이 당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우루무치 화재 참사에 항의하기 위해 백지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상하이에서 전날 늦은 오후 시작된 새로운 시위가 밤까지 이어졌다"며 "경찰이 오후 5시 전에 안푸와 우위안 교차로를 봉쇄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지만 이후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사람들은 국가(國歌)와 인터내셔널가(국제 공산당가)를 불렀고 '인민 경찰은 인민을 위한 것이다', '구금자를 석방하라', '인민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덧붙였다.
또한 창수와 우위안 교차로에는 대부분 20대인 약 500명이 모여들었고, 약 10명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손팻말과 백지를 들었다고 전했다.
현장의 목격자들은 SCMP에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면서 일부를 연행해갔다"며 "구호를 외친 이들만 연행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국가 제창을 이끈 한 여성은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을 뿐이다"라며 "그들은 우리에게 발언의 자유조차 주지 않는다. 우리의 목소리는 경청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들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애쓰면서 "집에 가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해라", "에너지를 여기서 낭비하지 말고 집에 가서 네 인생을 즐겨라"라고 말했다.
명보는 "소셜미디어에 따르면 어젯밤에도 상하이 우루무치 거리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서 신호등도 무시했고 일부는 거리 표지판 '우루무치중루'(烏魯木齊中路)를 떼어내 버렸다"며 "많은 경찰이 몰려와 버스 가득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경찰이 연행한 이들을 구타하는 영상도 올라왔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 따르면 전날 저녁 코로나19 사태가 최초로 발발한 우한과 청두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다고 SCMP는 전했다.
로이터는 이날 상하이 당국이 지난 이틀간 시위가 벌어진 현장 주변에 파란색 철제 장벽이 세워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경찰관이 짝을 이뤄 현장을 순찰하고 경찰차와 오토바이도 현장을 맴돌았다"며 "해당 지역 상점과 카페는 이날 문을 닫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 직원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날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는 새로운 시위의 움직임은 없었다"며 "대신 소셜미디어에서는 시위 관련 토론,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며 검열 당국과의 (쫓고 쫓기는) '고양이와 쥐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국 관영매체들은 시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대신 논평을 통해 코로나 방역 규정을 준수하라고 촉구했다"고 지적했다.
전날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영국 BBC 기자가 몇 시간 동안 경찰에 붙잡혀 구타를 당했다고 BBC가 밝힌 가운데, 로이터는 자사 기자도 전날 밤 약 90분간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났다고 밝혔다.
홍콩과 대만에서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홍콩프리프레스(HKFP)에 따르면 홍콩대에서는 전날 오후 학생들이 백지를 든 채 중국에서 벌어진 시위에 대한 연대를 표하는 침묵시위를 펼쳤다.
이어 당일 저녁에는 2명의 학생이 교내에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애도하는 포스터를 붙이려다 학교 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자 자진 해산했다
홍콩대 학생 저널 '언더그래드'에 따르면 해당 학생들은 중국 본토 출신으로 우루무치 희생자를 애도하는 유인물과 꽃을 갖고 있었다.
대만 타이베이 자유광장에서도 백지와 촛불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어 중국 시위를 지지하는 연대 행사를 벌였다고 명보는 전했다.
앞서 지난 24일 신자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의 아파트에서는 화재로 1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루무치는 지난 8월부터 대부분의 지역이 봉쇄된 상태다.
이 화재가 봉쇄 탓에 제때 진화되지 못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소셜미디어에서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다음 날 우루무치를 시작으로 26∼27일에는 중국 여러 지역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에 동참한 대학도 50여 곳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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