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 고려 않다가 통제불능 치닫자 임시변통 대응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이 10개월째 이어지는 동안 러시아 정부는 핵무기 사용이나 확전 가능성 등을 위협했다가 되물리기를 반복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왔다.
그런 까닭에 미국과 서방 각국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진짜 '레드라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측이 무성하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선 푸틴 대통령이 당초 장기전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 거듭된 최후통첩과 유턴, 수시로 전쟁목표를 수정하는 행태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며칠이면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전황이 통제불능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그때그때 임시변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객원교수인 마이클 클라크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전 소장은 "현재 푸틴의 행동에는 어느 정도 절박함이 있다. 전장 상황이 잘 안 풀리고 있고 결국은 군사적으로 해결을 봐야만 한다는 걸 분명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4개 점령지의 러시아 합병을 앞둔 지난 9월 21일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며 "러시아와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이건 허풍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으나, 불과 한 달 뒤 방송된 인터뷰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쓸 계획이 없다며 기존 입장을 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원조를 차단할 목적으로 핵전쟁 위기를 고조시켰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외교적 고립만 심화한 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2014년 러시아에 강제병합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가 지난달 8일 폭발로 훼손된 이후 우크라이나 전역의 전력 기간시설을 겨냥해 집요한 폭격을 퍼붓고 있다.
에너지와 전력, 수도를 끊어 대규모 피란민을 유럽으로 밀어 넣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역시 핵전쟁이나 확전을 불사하겠다던 기존 발언과는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9월 말 러시아 합병을 선언했던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 헤르손시(市)에서 이달 초 철수한 것이나 러시아 서부 접경도시 벨고로드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피해가 잇따르는데도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것도 특기할 지점으로 꼽힌다.
WSJ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의 흑해함대와 민간 선박을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곡물 협정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가 나흘 만에 협정에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술적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에 파병한 러시아군이 연전연패하면서 러시아 정부의 전쟁 목표는 계속 하향 조정되는 모양새다.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만 해도 푸틴 대통령은 '탈나치화'란 명분을 내세워 친서방 정부를 무너뜨리고 친러 정권을 수립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하지만, 지난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혀 이러한 목표를 포기했음을 시사했다.
다만, 일각에선 핵위협 등으로 위기를 고조시켰다가 물러나길 반복하는 러시아 정부의 행태가 불리한 전황과 경제악화, 외교적 고립 등 현실에서 관심을 돌림으로써 단기적으로는 푸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됐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고 WSJ은 전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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