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20세기 독일 표현주의 화가 막스 베크만의 자화상이 1일(현지시간) 베를린 경매하우스 그리제바흐에서 2천만 유로(약 273억 7천만 원)에 팔려 독일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이날 보도했다.
'자화상 겔프-로사(노랗고 붉은 자회상)'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그림은 경매에 앞서 미국 뉴욕에 이어 그리제바흐에 차례로 전시돼 수천 명이 관람했다.
아직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낙찰자는 그림값 외에 부대비용을 포함해 2천320만 유로(약 317억 5천만 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은 베크만이 50세 때인 1944년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그린 것으로, 그가 그린 여러 자화상 가운데 매우 드물게 밝은 색조를 쓴 것이 특징이다.
베크만은 이 자화상에서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젊게 그렸으며, 드레싱 가운처럼 보이는 털 레이스가 달린 노란 옷은 베크만 자신이 말하던 "예술의 왕"을 상징하는 듯하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베크만은 1937년 독일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타락한" 예술가를 비난하는 연설을 한 다음 날 암스테르담으로 도망쳤다.
그가 독일을 떠난 뒤 나치 당국은 여러 곳에 전시돼 있던 그의 그림 500점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1940년 나치가 네덜란드를 침공하자 그는 운하 근처의 오래된 담배 창고로 아틀리에를 옮겨 주로 자화상을 그리며 생활을 이어갔다.
실제로 베크만은 암스테르담에서 지낸 10년 동안 다른 어떤 시기보다 많은 작품을 남겼다.
베크만은 당시 자신의 그림을 '꽈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의 부인 마틸드에게 줬다가 다시 가져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팔곤 했다.
이날 낙찰된 자화상은 마틸드가 1986년 미국에서 사망할 때까지 간직하고 있던 몇 점 가운데 하나다. 1996년 다른 이에게 팔렸다.
베크만이 암스테르담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자화상에 대해 비평가인 유진 블룸은 "그가 견뎌야 했던 정신적 위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베크만은 오랜 기간 망명객 신세로 지내는 동안 그림을 통해 "조국을 찾고 싶어 하지만 결국 정처 없이 떠도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고 밝혔다.
그 시기 그가 쓴 일기에는 "고요한 죽음이 엄습하고 주변은 온통 불길로 휩싸여 있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적혀 있다.
베크만과 그의 부인 마틸드는 결국 독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들은 1947년 미국으로 이민했고, 베크만은 1950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번 경매에는 오토 딕스와 에곤 쉴레.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등 여러 유명 화가의 작품 56점이 출품돼 이 가운데 19점이 낙찰됐다.
독일에서의 미술품 경매 낙찰가가 1천만 유로(약 137억 원)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슈투트가르트 나겔 경매하우스에서 중국 명대(明代) 헌종(憲宗)의 첩이 1473년 왕에게 바친 청동 조각이 950만 유로(약 130억 3천만 원)에 팔렸다.
그리제바흐의 미카엘라 카피츠키 이사는 "이번에 낙찰된 자화상과 같은 작품이 또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번 경매는 매우 특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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