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새 안보틀 주장하며 '나토에 대한 러의 안보우려 해결해야' 언급
우크라·서방 각국서 "러 선전전 방조" 비난 고조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이른바 '러시아 안보보장론' 주장이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마크롱의 주장은 평화협상을 성사시키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명분을 지지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자국 방송사 TF1에 방송된 인터뷰에서 유럽이 미래의 안보 틀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같이 제의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항상 말했듯, 나토가 그들의 문지방 바로 앞까지 올 것이란 (러시아의) 두려움은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사항 중 하나"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어떻게 우리 동맹과 회원국을 보호하고,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에 돌아왔을 때 어떻게 (안보) 보장을 제공할지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올해 2월 1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 개시 명분의 하나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 저지를 들었다.
나토가 더는 동진을 하지 않겠다는 1990년대의 구두 약속을 어기고 확장을 계속했기에 자국과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에서 어쩔 수 없이 '특수군사작전'을 벌이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침공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침공은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들어선 반러·친서방 정권을 무너뜨리고 우크라이나를 다시 자국 영향권에 편입하려는 목적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도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의 안보위협론 주장을 다시 꺼내든 데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누군가가 테러범과 살인자 국가에 안보보장을 제공하길 원한다고?"라고 반문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문명화된 세계는 러시아로부터의 안보보장을 필요로 한다"고 꼬집으면서 전쟁주동자와 전범에 대한 재판과 배상, 책임 규명이 있고 난 뒤에야 관련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각국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독일 집권 사회민주당(SDP)의 외교정책 전문가 닐스 슈미드는 현지 일간 디벨트 인터뷰에서 "마크롱의 발언은 놀랍다. 나토는 러시아를 위협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dpa 통신은 전했다.
야당인 기독민주당(CDU)의 요한 와데풀 의원도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대단히 문제가 있다"면서 "무엇보다도 그는 나토를 안보 우려의 원인으로 제시함으로써 유감스럽게도 러시아의 선전전을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리투아니아의 리나스 린케비치우스 전 외교장관은 "러시아는 이웃을 공격, 병합, 점령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안보보장을 받고 있다"고 꼬집었고, 알렉산더 스툽 핀란드 전 총리도 "러시아가 타국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먼저 필요하고, 그때에야 우리는 (유럽 안보) 관련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초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위기 해결사를 자처하며 서방 각국 정상과 푸틴 대통령을 연쇄적으로 만나면서 우크라이나를 '핀란드화'(Finlandization)하는 방안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져 반발을 산 바 있다.
핀란드화란 서방과 소련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가 소련의 대외정책을 추종한 사례를 가리키는 용어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정과 외교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의미로 해석됐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은 2월 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서는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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