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영매체 "바이러스는 약하고 우리는 강하다"…'제로 코로나' 암묵적 폐기
의료체계 대비 불확실…"대중의 혼란이 바이러스보다 심각할 수도"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중국이 '백지 시위' 열흘 만에 사실상 '위드 코로나'의 길을 선택했지만, 갑작스러운 방역 완화에 따른 감염 폭증에 대처할 능력을 갖췄는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당국은 7일 재택 치료를 허용하고,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대폭 줄이며 '묻지마 봉쇄'를 금한다는 내용의 10가지 '방역 추가 최적화 조치에 대한 통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방역 완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감염자 폭증의 단계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에 대한 뚜렷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민심의 동요가 또 다른 주요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일 "방역 완화로 중국은 이제 바이러스가 인구를 휩쓸 가능성과 의료 체계가 그러한 잠재적 감염 폭증에 준비돼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대 바이러스학자 진둥옌 교수는 SCMP에 "중국은 암묵적으로 이미 '제로 코로나' 정책을 버렸다. 그러나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매우 분명한 그림은 아직 그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언제 국경을 재개방할 것인지, 대규모 감염 사태가 예상되는지, 그러한 사태에 준비돼 있는지, 현재의 목표는 사망자와 중증환자를 줄이는 것인지, 코로나19는 독감처럼 치료할 것인지 등에 대해 대중과 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중의 혼란이 주요 이슈다. 그것은 바이러스 자체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주재 외국 기업들은 나란히 방역 완화 조치를 환영했지만 우려도 표했다.
외르그 부트케 주중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회장은 SCMP에 "우리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를 분명히 환영한다. 중국이 처음으로 출구 전략을 시사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홍콩과 대만에서 배웠듯 (방역 정책) 전환 과정은 매우 힘겨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중 영국 상공회의소는 성명을 통해 방역 완화를 환영하면서도 격리 통제, 국내외 여행, 검사 요건 등과 관련해 좀 더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콩 명보에 따르면 전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부주임이자 현 '국가 합동 코로나19 예방·통제 전문가 그룹' 일원인 펑쯔젠은 최근 발표한 '오미크론에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에서 "어떤 정책을 펼치든 대부분의 사람은 필연적으로 한 번 감염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수학적 계산에 따르면 대규모 감염 충격의 첫 번째 파동이 정점에 도달하면 인구의 감염률이 약 60%에 도달할 것"이라며 "이후 차츰 안정기로 접어들 것이며 결국 우리 국민의 최종 누적 감염률은 80∼90%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감염 확산 속도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을 수도 있겠지만 대규모 감염이 발생할 경우 봉쇄나 격리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면서, 전염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의료 시스템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노인에 대한 백신 접종을 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전날 방역 완화 추가 조치를 발표한 직후 관영 통신 신화사는 논평에서 "바이러스는 약하고 우리는 강하다"며 지난 3년간 중국이 생명을 최우선시하며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국의 전염병 예방·통제 정책은 정확하고 과학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SCMP에 따르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 코로나19 대응 전문가팀 수장인 량완녠 칭화대 교수는 전날 방역 완화 조치 발표 후 기자들에게 방역 완화가 대중의 분노에 대응한 것이 아니며 선제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노인층의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의약품을 비축하는 등의 준비를 하며 의료 체계가 압도당하지 않도록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콩대 진 교수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치료제인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같은 약을 정말로 필요한 이들이 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팍스로비드를 수입했지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아울러 SCMP는 갑작스러운 방역 정책 변화에 중국인들의 반응이 엇갈린다고 전했다.
상하이 주민 프랭크 주 씨는 "나는 아직 부스터샷을 맞지 않았다"며 "변화가 너무 빨라 걱정된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민 장샤 씨는 "베이징의 약국들에서는 이미 독감과 코로나19 치료제가 동났다"며 "정부가 갑자기 방역 완화를 발표하면서 우리에게 약을 비축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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