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안전 큰 문제 없어도 주차난·층간소음 심하면 재건축 가능성 커져
안전진단 미통과 서울 30만, 경기 28만여 가구 수혜
적정성 검토 사실상 '무력화' 평가…"안전진단 신청 76%가 통과 전망"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재건축 안전진단 관련 규제가 약 5년 만에 대폭 완화된다.
안전진단 통과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지던 구조안전성 비중이 축소되고,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가 사실상 사라지거나 최소화되면서 30년 이상 노후 단지의 재건축 사업 추진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전국적으로 150만여 가구의 아파트가 안전진단 기준 완화에 따른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안전진단 대폭 손질…재건축 판정 '0'에서 최대 76%까지 허용 기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30년 이상 노후화된 단지들의 숙원이었다.
정부는 최근까지만 해도 집값 불안 등을 이유로 안전진단 발표와 시행 시기를 미뤄왔으나 최근 집값이 하락하고 시장 경착륙 우려까지 커지면서 발표 시기를 이달 초로 앞당기고, 시행도 내년 1월로 못박았다.
정부가 안전진단 기준 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가 구조안전성 비중을 20%에서 50%로 강화하고, 조건부 재건축 대상에 대해 의무적으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거치도록 하면서 재건축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부터 사업이 막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안전진단 통과 건수는 전국적으로 139건(연 49건), 서울은 59건(연 21건)에 달했으나 2018년 3월 기준 강화 이후로는 지난달까지 안전진단 통과 건수가 전국 21건(연 5건), 서울은 7건(연 2건)으로 급감했다.
국토부는 이번 개선 방안에 대해 "안전진단의 취지에 맞는 기준을 마련함과 동시에 안전진단이 인위적인 재건축 규제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50%에서 30%로 낮췄다. 대신 주거환경 비중은 종전 15%에서 30%로 2배 높이고 설비 노후도 비중은 종전 25%에서 30%로 상향했다.
개선안이 시행되면 구조안전에 큰 문제는 없더라도 주차공간이 부족하거나 층간소음이 심해 주민 불편과 갈등이 큰 아파트 또는 배관 누수·고장, 배수·전기·소방시설이 취약한 아파트처럼 생활이 불편한 경우에도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진다.
안전진단 평가 총점에서 조건부 재건축의 범위도 축소했다.
현재 안전진단을 신청하면 평가항목별 점수 비중을 적용해 합산한 총점이 30점 이하인 경우 '재건축' 판정이 내려지는데, 앞으로는 45점 이하면 곧바로 '재건축' 판정을 받아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공공기관의 적정성 평가와 재건축 시기조정을 받도록 했던 '조건부 재건축' 판정 대상은 점수의 범위를 종전 30∼55점에서 45∼55점으로 대폭 축소한다.
조건축 재건축 범위가 넓어 사실상 재건축 판정을 받기 어려웠던 문제점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평가 항목 배점 비중을 줄이고, 조건부 재건축 범위를 축소하면 안전진단 통과 단지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분석 결과 2018년 3월 이후 현행 기준으로 안전진단 절차가 완료된 46개 단지의 경우 '재건축' 판정을 받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54.3%(25개)가 유지보수 판정을 받아 재건축이 불가했고, 45.7%(21개)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앞으로 개선된 기준이 적용되면 앞서 46개 단지중 26.1%(12개)는 재건축 판정을 받고, 50%(23개)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는 등 전체의 76% 이상(35개)이 재건축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토부는 이번 개선안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새로 안전진단을 추진하는 단지는 물론 2차 안전진단에서 탈락했거나 현재 안전진단을 수행중인 모든 단지에도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공공기관 적정성 의무 검토 대상이나 절차를 완료하지 못하고 진행중인 단지에도 적용된다.
◇ 2차 검토 사실상 사라져…중대 오류 발견시만 지자체가 신청
적정성 검토 대상 축소와 함께 앞으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는 지자체가 필요한 경우만 하도록 제한된다.
현행은 민간 안전진단 기관이 안전진단을 수행한 1차 안전진단 점수가 조건부 재건축에 해당하면 의무적으로 국토안전관리원이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공공기관에서 적정성 검토(2차 안전진단)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정부가 집값 상승을 이유로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2차 안전진단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 안전진단 절차를 밟고 있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단지의 경우 1∼14단지 가운데 현재까지 2차 적정성 검토를 통과한 단지는 6단지 한 곳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더라도 앞으로는 원칙적으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거치지 않도록 하고, 중대한 오류가 발견돼 지자체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시행하도록 했다.
입안권자인 시장·군수·구청장이 1차 안전진단 결과 중 기본 확인사항에 대해 검토하고, 이 과정에서 명확하게 확인된 오류나 근거자료가 미흡해 평가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적정성 검토를 요청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공공기관이 적정성 검토를 요청하는 경우에도 1차 안전진단 내용 전체가 아니라 미흡한 부분에 한해 적정성 검토를 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적정성 검토는 의미가 없어졌다. 대상이 대폭 축소되거나 사실상 폐기 또는 무력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국토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실태 조사로 미흡한 내용이 확인되거나 분쟁·제보 등이 있는 경우엔 지자체장에 적정성 검토를 권고하거나 시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정부는 앞으로 안전진단이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없이 민간진단기관의 책임하에 시행되도록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 실태 점검 등을 병행해 안전진단을 내실화할 방침이다.
또 조건부 재건축에 적용하던 재건축 시기 조정방안도 보완해 시장 불안이나 전월세난이 우려되는 경우 정비구역 지정(정비계획 수립)을 1년 단위로 조정하도록 하는 등 시기 조정 방법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 목동·상계동 등 서울 30만가구 수혜…안전진단 빨라질 듯
정부는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고시)'을 이달 중으로 행정예고를 거쳐 개정하고, 1월 중 시행할 예정이다.
또 개선안이 1기 신도시 정비사업에도 적용되도록 이번 개선방안의 적용 효과 등을 검토해 필요하면 내년 2월 발의 예정인 1기 신도시 특별법에 추가로 제도개선안을 담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침체한 재건축 사업 추진 단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은지 30년 이상 지나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아파트(200가구 이상) 중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는 전국적으로 1천120개 단지, 151만가구에 이른다.
수도권의 경우 서울 389개 단지 약 30만가구, 경기 471개 단지 28만5천가구, 인천 260개 단지 14만6천가구 등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단지수로는 노원구가 79곳으로 가장 많고, 강남구 46곳, 송파구 23곳, 도봉구 34곳, 양천구·강서구 각 22곳, 영등포구 20곳 등이다.
당장 재건축 추진 단지가 많은 양천구와 노원구는 이번 조치의 최대 수혜지역으로 꼽힌다.
목동신시가지 1∼14단지 가운데 안전진단을 통과한 6단지 외에 9단지와 11단지는 앞서 2차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한 상태여서 이번에 안전진단을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앞두고 있거나 진행중인 나머지 단지들도 새 기준을 적용받음에 따라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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