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관문 문턱 낮춰 재건축 추진 단지 늘듯…집값 영향은 미미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정부가 8일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준공 후 30년이 넘어선 단지들의 재건축 추진이 빨라질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항목 중 구조안전성 점수 비중을 50%에서 30%로 줄이고,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점수 비중은 각각 현행 15%와 25%에서 모두 30%로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재건축 판정 점수도 개정해 조건부 재건축 판정 점수도 45∼55점으로 범위를 축소하고 조건부 재건축에 해당하면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던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2차 안전진단)도 지자체의 요청이 있을 때만 시행하도록 했다.
안전진단 통과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던 구조안전성 점수 비중이 낮아지면서, 탈락을 우려해 선뜻 재건축을 추진하지 못하던 단지들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하면서도 재건축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등 추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목동·상계 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 수혜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30년 이상 단지들의 재건축 추진이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정부가 추진하는 270만호 공급 목표 달성을 위한 기반 조성으로 볼 수 있다"며 "내년 1월 정책 시행 이후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단지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와 노원구 상계주공 등 안전진단을 앞둔 재건축 단지가 수혜 단지로 꼽힌다.
노원구 상계주공은 16개 단지 중 5단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 사업을 진행 중이고, 1단지와 6단지는 1차 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이 결정돼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를 남겨두고 있다.
2단지는 1차 안전진단이 진행중이고 나머지 3·7·9·11·13·16단지는 안전진단 현지 조사를 마친 뒤 1차 안전진단을 앞두고 있다.
상계주공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대부분 단지가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를 기다려온 만큼 주민들 사이에서는 재건축이 전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란 기대가 많다"고 전했다.
목동신시가지는 1∼14단지 중 6단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2차 안전진단에서 탈락한 9, 11단지를 제외한 2만3천여 가구에 달하는 나머지 단지는 1차 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아 현재 적정성 검토를 진행중이거나 진행을 앞두고 있다.
목동신시가지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9, 11단지가 2차에서 탈락한 뒤 다른 단지들도 2차 안전진단 신청을 보류하고 움츠러들어 있던 상태였다"며 "이번 발표로 자금이 준비된 단지들은 컨설팅을 받아서 하나둘 다시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그는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이미 재건축 허가 난 곳들도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뛰어들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해줬다고 바로 추진하기보다는 상황을 살펴가며 신중하게 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강남구 일원동 수서1단지도 최근 재건축 안전진단 신청을 준비 중이다. 송파구 오금동 대림아파트는 1차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2차 안전진단을 앞두고 있다.
◇ 재건축 문턱 낮아졌을 뿐…재초환 과제 남아
전문가들은 안전진단을 통과해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규제 완화책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일단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에 준공된 단지들은 재건축 첫 관문인 안전진단 통과가 쉬워질 것"이라면서도 "재건축의 최종관문인 재초환 규제 완화가 뒤따라야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안전진단을 시행하려던 단지에는 호재지만, 재건축은 사업 완료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단기적인 가격 급등은 쉽지 않다"며 "재초환 같은 재건축 저해 요인이 여전하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건설업계에서도 재건축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 점은 분명하지만, 풀어야 할 규제들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안전진단 완화로 우후죽순으로 재건축에 나서는 단지들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지도 고려할 문제"라며 "재개발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려면 용적률 완화나 재초환 규제 등 추가로 풀어야 지금 정책이 더 효과를 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재건축 첫 단계는 빠르게 진행되겠지만 이후 넘어야 할 단계는 여전히 많고 규제도 남아있는 점은 문제"라며 "내년에 바로 시공사를 선정하거나 속도를 내는 단지가 가시적으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 고금리·집값 하락 우려에 호재에도 가격영향 제한적
이날 안전진단 완화에도 불구하고 집값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고금리로 인한 대출이자 부담과 집값 하락 우려에 거래절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책적 호재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 폭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이번 조치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했다.
임병철 부동산R114 팀장은 "재건축 안전진단이 정비사업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고 고금리 여파로 매수세가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어 거래시장에 온기가 돌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앞서 여의도 공작아파트, 은마아파트 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가 사업에 속도를 냈지만, 부동산 한파로 아직 시장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양천구 신정동의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주민들 같은 경우 재건축 진행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매수 문의는 들어와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실제 거래로 성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구단위계획 통과 소식 때도 초급매로 나온 매물만 몇 개 거래되고 가격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며 "이번 재건축 안전기준 완화 발표에도 급매 위주로만 거래되는 상황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공인중개소 대표도 "재건축을 앞둔 노원에는 이번 정책이 상당히 호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금리 부담 때문에 선뜻 매수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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