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일 사우디 방문해 아랍권에 美 대신할 파트너로 존재감 각인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9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양자와 다자 회담을 통해 미중 전략경쟁에서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사우디를 포함한 아랍권 17개국과 연쇄 양자 정상회담을 했고, 중국-아랍 정상회의와 중국-걸프협력회의 정상회의에 각각 참석했다.
시 주석은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산유국들과의 연쇄 회담을 통해 이들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석유·가스 등 에너지 수입원의 안정화를 도모했고,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의 성격이 있는 석유·가스 대금 위안화 결제 '카드'를 제시했다.
셰일 혁명으로 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낮아진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에 주력하는 상황에서 중동 국가들은 새로운 '역외 균형자'로 중국을 초대했고, 중국은 이 기회를 경제·안보상의 실리로 연결하려 한 모양새였다.
◇ 美와 껄끄러운 '중동 맹주' 사우디와 관계 강화…39조원 거래 합의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우선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시 주석의 국빈 방문 계기에 중국과 사우디는 그린 수소·태양광·건설·정보통신·클라우드·의료·교통·건설 등 분야에 걸쳐 총액 1천100억 리얄(약 38조6천억원·사우디 국영 SPA통신 보도 기준) 규모의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사우디에 클라우드 및 초고속 인터넷 단지를 건설하는 계획도 이 협정에 포함됐다.
경제뿐 아니라 정무 면에서도 양측은 격년제로 양국을 오가며 셔틀 정상회담을 하기로 하고, 양국 고위급 공동위원회를 총리급으로 격상키로 하는 등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내실을 다졌다.
의전 면에서 사우디는 시 주석의 전용기가 7일 영공에 진입하자 공군 전투기 4대를 띄워 에스코트하고, 공항 근처에서는 의전 호위기 '사우디 호크' 6대를 띄우는 등 특별한 대우를 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월 석유 증산을 요구하기 위해 사우디를 찾았을 때의 사무적이고 냉랭한 응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사우디는 중동에서 발을 뺀 채 관심을 대중국 견제에 쏟고 있는 미국을 향해, 새로운 '역외 균형자'로 중국을 초대했음을 마치 과시하듯 보여줬다. 중국도 미국과 사우디의 '냉기류가' 만든 공간을 치고 들어가 경제 영역에서 실리를 챙겼다.
◇ 中, '내정불간섭' 고리로 중동국가 '우군 만들기' 박차
시 주석은 이번 방문 계기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중심의 아랍권 국가들을 '우군'으로 만드는 면에서도 일정한 진전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9일 열린 중국-아랍 정상회의 결과물인 '리야드 선언'에 따르면 아랍 국가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의 확고한 준수와 대만 독립 반대를 확인하는 한편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위반 논란이 제기된 홍콩 문제에서도 중국을 철저히 지지했다.
시진핑 주석의 어젠다인 글로벌개발이니셔티브(GDI)와 글로벌안보이니셔티브(GSI)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긍정적 평가도 리야드 선언에 담겼다.
중국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아랍국가들과 입장을 같이 했다. 시 주석은 중-아랍 정상회의 연설에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 유엔 정식 회원국 가입을 지지하고, 대팔레스타인 지원을 지속 늘리겠다고 밝혔다.
리야드 선언은 "서로의 핵심 이익 및 중대 우려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정치적 조율과 상호 지지를 유지하고 각종 국제무대에서 공동으로 관심 두는 문제에 대한 단결을 강화하기로 결심했다"는 문구를 담았다.
또한 시 주석은 중-아랍정상회의 연설에서 "중국-아랍 운명공동체를 더욱 긴밀히 구축"해야 한다면서 중국은 아랍국가들이 자국 발전의 길을 자주적으로 택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진정한 다자주의 실천, 내정불간섭, 개도국의 정당한 권익 수호 등을 시 주석은 강조했다.
결국 중국은 시 주석 연설과 리야드 선언에 자국을 포위하는 미국에 맞서 제시해온 논리를 대거 반영하며 자국에 대한 동조세 규합을 모색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 시진핑, 석유·가스 위안화 결제 제안하며 달러 패권에 균열 시도
석유·가스 등 중국이 여전히 크게 의지하는 화석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면에서 시 주석은 진전을 거뒀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 평가다.
중국은 사우디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최대 원유 수입국이고, 사우디 역시 중국의 중동지역 최대 무역 상대국인데 이번에 이 같은 협력 구도가 더 공고해진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 방문 기간 에너지 교역과 관련한 구체적 계약은 공개된 것이 없지만 중국-사우디 공동성명은 "에너지 협력 강화는 양국 간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체현"이라며 석유화학 분야 공동투자 기회 탐색 등에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시 주석은 GCC국가 정상들과의 회의에서 GCC국가들로부터 석유와 가스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는 미중 전략경쟁 시대 중국의 경제와 안보 모두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게 중평이다. 특히 대만해협을 둘러싼 충돌 등 극단적 상황에서 미국 등 서방의 제재에도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파이프라인'을 다지는 일이 시 주석의 이번 사우디 방문 중 핵심 어젠다 중 하나였을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특히 시 주석은 중국-GCC 정상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향후 3∼5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할 협력 사안에 대해 언급하면서 석유·가스의 위안화 결제 구상도 제시했다.
물론 이는 수출국가들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며, 아직 중동 산유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이 개입해 이런 구상을 불발로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산 수입품 대금에 대한 직접 지불을 위해 소규모 석유 수출분에 대해 위안화를 받는 것은 납득이 되지만, 전면적 위안화 결제에 대해서는 "아직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는 사우디 소식통의 시 주석 방문 전 발언을 전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중동 내 미국의 영향력 퇴조 속에 중동산 석유의 중요 고객인 중국이 위안화 결제 카드를 꺼낸 것은 '글로벌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의 몸짓이라는 점에서 우선 상징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석유 및 가스 수입에 대한 위안화 결제 추진은 미국 등 서방이 중국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제약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우회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사된다면 전략적 의미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앞서 시 주석은 지난 9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도 SCO 회원국 간의 독자적 지불 및 결제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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