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깨고 10개월 넘은 장기전화…우크라에 대규모 인도적 재앙 초래
중·러 VS 미·서방 신냉전 구도 고착…세계 경제 위기 '도미노'
협상 목소리 커지지만 입장차 여전…1년 넘는 장기전 불가피 우려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지난 2월 24일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와 북부, 남부 국경을 넘어 전면 침공을 감행했다. 20만 명에 이르는 병력과 미사일, 탱크, 장갑차를 앞세운 러시아의 도발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21세기 첫 국가 간 대규모 전면전에 러시아가 핵 위협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세계가 3차 세계대전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것을 넘어 세계 안보와 경제에도 막대한 충격파를 던졌다.
중국·러시아가 미국 등 서방에 맞서는 신냉전 시대가 본격화했고, 코로나19 사태에서 겨우 회복하는 듯했던 세계 경제는 에너지·식량 위기, 유례없는 인플레이션 등 일찍이 보지 못한 다중 위기에 내몰렸다.
◇ 핵전쟁 위기 속 양국 피해 '눈덩이'
개전 직전까지도 러시아가 실제로 침공을 감행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크라이나가 며칠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드론과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에 기갑 전력이 속수무책으로 격파당하는 등 허술한 모습을 잇달아 노출했다.
한 달간의 키이우 공세에 실패하고 전략을 수정한 러시아는 포병 전력의 우위를 앞세워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해안선을 잇는 점령지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쟁의 장기화와 서방의 제재 속에 러시아는 점차 힘이 빠지기 시작한 반면 서방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9월 들어 동북부 하르키우주를 대부분 수복하며 전황을 뒤집었다.
이에 러시아가 9월 말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를 전격 합병하고, 예비군 30만명을 징집하는 부분 동원령에 핵 위협까지 불사하면서 세계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60년 만에 핵전쟁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남부 요충지 헤르손을 8개월 만에 탈환하는 등 반격의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전선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러시아는 대규모 공습으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을 집중 타격하며 우크라이나에 혹독한 겨울을 안기려 하고 있다.
지난 10개월간 러시아군 전사자는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우크라이나도 이에 못지않은 전사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유엔과 우크라이나 당국은 민간인 사망자 수를 각각 6천700여 명, 8천3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이는 증거로 확인된 것만 포함된 수치다. 해외로 떠난 피란민은 789만 명에, 국내 피란민도 650여만 명에 달하는 등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 사태가 발생했다.
◇ 세계 경제 '치명상'…내년이 진짜 위기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최대의 무력 분쟁인 이번 전쟁은 세계 안보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든 변곡점이 됐다.
냉전이 끝났다고 믿었던 중립 성향의 유럽 국가들은 설마설마하던 러시아의 침공을 눈앞의 현실로 목도하면서 냉엄한 지정학적 현실을 자각하게 됐다.
70년 이상 중립을 지켜왔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결정했고 발트3국과 동유럽 옛 공산권국가 중 다수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 유럽 집단안보체제 강화에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다. 미국을 선두로 한 서방 진영의 거센 견제를 받아온 중국은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감싸고 돌았고 이란, 시리아 등 반서방 국가들 역시 러시아와 밀착 관계가 더욱 깊어졌다.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중견국들과 일부 산유국들은 서방의 대러 제재에 전적으로 동참하기보다는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은 에너지·식량 대란과 미증유의 물가 폭등을 불러옴으로써 세계 경제에도 초대형 악재가 됐다. 두 교전국이 모두 세계적 자원 부국이자 식량 수출국이라는 점 때문에 충격은 배가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수십년 만에 10% 안팎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이에 기겁한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침체 우려를 무릅쓰고 연이어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등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유럽은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가스 공급을 대폭 줄인 데 따른 직격탄을 맞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에 따르면 올해 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3%에 이르고 내년에도 7% 수준을 유지하다 2024년에 가서야 3%대로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내년 성장률은 0.3%에 그칠 전망이다.
선진국에 비해 대외 부채가 많고 경제 체질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의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올해만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3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은 데 이어 다른 개도국에서도 국가 부도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라는 진단도 있다. 전쟁 장기화와 고물가 상황에서 주요국의 통화 긴축에 따라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9월 펴낸 중간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6월보다 0.6%포인트 낮은 2.2%로 제시했다.
◇ 러·우크라 '평행선'…겨울 맞아 전선 고착화
우크라이나의 인도적 위기에 세계적 고통까지 가중되면서 조심스레 휴전을 모색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미국과 러시아는 최근 최악의 양국 관계 속에서도 죄수 교환을 성사했다.
그러나 실제 휴전을 논하기에는 당사국 간 간극이 너무나도 큰 것이 현실이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포함해 전쟁 전 영토 회복과 전쟁범죄 처벌, 피해 배상, 전후 안전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합병한 점령지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500~700㎞ 떨어진 러시아 내 2개 군사기지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하고, 러시아가 이를 우크라이나에 의한 본토 공격으로 규정하고 다시금 핵 위협을 가하면서 확전 위기까지 고조되는 형편이다.
"모든 수단을 쓸 수 있다"고 시작한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도 이제는 "가장 앞선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휘두르고 싶진 않다", "미국식 선제타격 개념 채택을 고려하고 있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대결 국면이 격화하는 가운데 겨울을 맞아 전선은 참호전 양상 속에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아울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군사 작전이 용이해지는 내년 봄까지는 최대한 전력을 비축하는 데 집중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전쟁은 결국 1년을 넘긴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우크라이나와 세계의 고통도 더욱 깊고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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