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결산] 3高에 짓눌린 산업계…글로벌 복합위기속 악전고투

입력 2022-12-16 07:11  

[2022결산] 3高에 짓눌린 산업계…글로벌 복합위기속 악전고투
전쟁·에너지·공급망 리스크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연쇄충격
수출 버팀목 K반도체마저 수요위축 칼바람…"내년 전망도 어두워"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김기훈 권희원 기자 =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올 한해 국내 산업계는 '3고(高)'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코로나 대유행의 충격에서 벗어나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갈등 속에 물거품이 됐다. 글로벌 에너지·공급망 위기가 동시에 불거졌고 덩달아 물가도 치솟았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을 필두로 주요국이 앞다퉈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세계 경제에는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게다가 미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가 한동안 이어지며 국내 기업들은 '퍼펙트 스톰'(복합위기)에 신음해야 했다.

◇ 경기침체 우려에 소비 위축…반도체까지 비틀
고물가·고금리로 가계 실질 소득이 줄자 우선 소비가 힘을 잃었다.
하반기 들어서는 한국이 자랑하는 반도체 업종마저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의 칼바람에 떨고 있다.
'K-반도체'를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작년 동기보다 31.4%, 60.3% 급감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황은 글로벌 경기와 밀접하게 연동되는 경향이 있는데, 경기침체 우려 속에 스마트폰과 PC, 가전 등 IT 제품 수요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반 토막이 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기업 투자도 위축되고 철강 수요가 줄면서 하반기 철강업계 실적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생산하는 열연강판(SS275)의 국내 유통 가격은 이달 2일 기준 톤(t)당 105만원으로, 6개월 전보다 16.7%나 하락했다.
수입 원자재 가격까지 상승하면서 수익성은 더 악화됐다.
철강 등 원자잿값 상승은 유례없는 수주 랠리로 슈퍼 사이클(초호황기)에 들어선 조선업계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수주 절벽을 어렵게 극복한 조선업계는 선박용 철강제품 가격 상승에 한동안 마음을 졸여야 했다.
선박 제조원가에서 20%를 차지하는 선박용 후판(선박에 쓰이는 두께 6㎜ 이상 철판) 가격이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계속 오르며 수익 차질이 우려된 탓이다.
국내 조선업 '빅3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후판가 상승 요인을 1분기 실적에 선반영하며 모두 적자를 냈다.

◇ 반도체 수급난·공급망 차질에 고전한 車업계
자동차업계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코로나 봉쇄에 따른 공급망 차질 등 악조건을 통과해야 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산차의 내수 판매는 작년 동기 대비 11.0% 감소했다. 일부 인기 모델은 대기 기간이 30개월에 이를 만큼 출고 지연이 심각했다. 신차 생산 차질이 계속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하반기 들어 반도체 수급 상황이 나아지긴 했으나 연간 판매량은 작년 실적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다.
수출 여건 역시 좋다고 할 수 없다. 러시아 수출과 현지 생산이 중단됐고, 고물가로 차량 구매가도 상승해 수요에 타격을 입혔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목표 판매량을 432만대에서 401만대로 줄였다. 투자계획도 9조2천억원에서 8조9천억원으로 축소했다.
그나마 친환경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고가 차량이 수출 호조를 보였다. 여기에 고환율 효과가 더해지면서 올해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500억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이런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3분기 최대 실적을 올렸다.
또 국제유가 급등에 정유업체들은 상반기에만 1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며 실적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 고금리·고환율에 투자 위축…기업 자금난도 심화
한동안 지속된 고환율도 국내 기업을 옥죄었다.
하반기 들어 한때 원/달러 환율은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인 달러당 1,400원선을 돌파했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원화 표시 매출액이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환율 상승이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교과서 공식'도 옛말이 됐다고 기업들은 입을 모은다.
또 수출 경쟁국인 일본 엔화도 급격히 평가절하되면서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며 기업의 돈줄마저 마르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산 비용 증가로 은행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 많아진 가운데 금리 인상 여파로 이자 부담까지 늘면서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 268곳의 올해 3분기 이자비용은 작년 동기 대비 42.1% 증가한 6조1천540억원이다.
투자비용 증가와 수요 위축에 기존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재검토하는 기업도 속출했다.
한화솔루션은 1천600억원 규모의 질산유도품(DNT) 생산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했고, 현대오일뱅크도 3천600억원 규모의 정유설비 신규투자를 중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 1조7천억원을 들여 배터리 단독공장을 짓기로 한 투자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레고랜드발 자금경색은 부동산업계를 강타했다. 대규모 사업자금이 필요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돈이 돌지 않아 건설업계에선 부도설이 나돌기도 했다.


◇ 수출도 둔화 조짐…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1%대
문제는 이런 상황이 쉽게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원자잿값 상승, 금리 인상 등 복합 악재가 지속되면서 내년에도 한국 경제가 '3고 터널'을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은행(1.7%)과 한국개발연구원(1.8%) 등 국내외 주요 기관이 내놓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대에 그친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도 식어가고 있다.
10월 수출액이 작년보다 5.7% 줄어 2020년 10월 이후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이어 11월에도 14.0%나 줄면서 감소폭이 확대됐다. 수출액이 2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인 것은 코로나 확산 초기이던 2020년 3∼8월 이후 처음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4분기 현재 한국 경제는 수출 경기가 침체하고 내수 활력이 크게 약화하는 국면에 있다"면서 "내년에는 경기 하강 속도가 빨라지면서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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