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갔다 공항 폐쇄로 비행 취소 '아찔'…"극적으로 봉쇄 풀려"
일부는 도로 막히며 버스서 옴짝달싹 못하기도…대사관 "비상 협력체계 유지"
(리마=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반정부·의회 시위로 불안이 지속되는 페루에서 세계적인 유적지 마추픽추를 찾았던 한인 관광객들이 공항 폐쇄로 겪어야 했던 아찔한 경험을 증언했다.
페루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인솔 중인 김일권 씨는 17일(현지시간) 22명의 팀원을 이끌며 보낸 지난 며칠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 일행이 옛 잉카 제국 수도 쿠스코에 도착한 건 지난 12일 오전이다.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 탄핵으로 촉발된 시위로 전국 곳곳이 심상찮은 분위기였지만, 그 불똥이 국제 공항 폐쇄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다.
"당장 쿠스코 도착한 날 오후부터 공항이 폐쇄되기 시작했다"던 김씨는 "늦어도 2∼3일 정도 지나면 비행이 재개될 것이라는 게 현지 관측이었다"고 회상했다.
애초 쿠스코 나흘 체류 후 16일에 리마에 오기로 했기 때문에 일정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김씨 일행은 그러나 쿠스코에서 일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찰과 시위대 충돌로 연일 사망자가 발생하자 박물관과 유적지 등이 속속 빗장을 걸어 잠근 데 이어 곳곳에서 험악한 기운이 감지되면서 마추픽추로 가는 길까지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지난 14일 페루 전역에 선포된 국가 비상사태 이후 경찰과 군인들의 모습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러다 한동안 못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기 시작했다.
김씨는 "식당들은 거의 정상 영업을 해 식사엔 문제가 없었지만, 향후 계획이 불안정해지면서 신변을 걱정하시는 분이 있었다"면서도 "대체로 차분한 상태에서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 일행은 특히 리마행 비행기를 예약해 놨던 16일 새벽까지도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고 한다. 쿠스코 공항 운영 재개가 불투명한 상태여서다.
"공항으로 향하면서도 걱정스러웠다"던 김씨는 그날 정오를 기해 극적으로 비행 재개를 확인하고서야 안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린 탓에 때아닌 '탑승 전쟁'이 벌어졌고, 김씨는 북새통 속에서 일행 비행 예약을 모두 확인받은 뒤 가까스로 2개 비행편으로 나눠 팀원 모두와 함께 당일 리마로 나왔다.
8년째 중남미 지역 투어를 책임졌다는 그는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상황을 겪곤 하는데,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일부 한국인 관광객은 고속도로 봉쇄로 옴짝달싹 못한 채 버스에서 하루 이상 머물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주페루 한국대사관은 교민 안전 모니터링과 함께 페루를 찾은 우리나라 관광객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쿠스코에는 이날 오후 4시 기준 약 40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다.
강홍모 영사는 "쿠스코 이외 지역에 계신 한국인 관광객 관련 사건사고 신고 접수는 없다"며 지역 영사협력원이나 한국인 사업가 등과 비상 협력체계를 운영하는 만큼 문제 발생 시 대사관에 즉시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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