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 100%에 국민 40% 빈곤층 전락
"고물가 고통 잊게 해줄 유일한 수단은 축구"
메시, 마라도나 이어 세계제패 '구세주' 될까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 기대에 들떠 심각한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참아낼 힘을 얻는 것으로 전해진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살인적으로 불리는 물가상승에 따른 빈곤 속에서도 기쁨을 내비치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빈민층을 위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파블로 마르티네스는 요즘 굶주린 어린이 손님이 늘었다며 침울해하면서도 월드컵 결승전이 한 줄기 기쁨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티네스는 "내가 지나치게 감정적이어도 이해해달라. 월드컵 결승전에 대한 기대로 소름이 돋을 정도"라면서 "아르헨티나는 우승해야만 한다. 월드컵 우승만이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을 가려줄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마르티네스의 무료 급식소를 찾은 페인트공 아드리안 비야그라도 "아르헨티나 형편은 그 어느 때보다 나쁘다"라면서 "축구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우리가 고통을 잊어버리게 해준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치솟은 물가와 경기 침체로 인해 전체 인구의 43%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지난달 기준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동월 대비 92.4% 올랐으며 올해 11월까지 누적 상승률은 85.3%로 집계됐다.
연말에는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이 100%에 달하고 2023년에는 112%를 기록할 것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 측의 대체적 의견이다.
아르헨티나는 한국 시간 19일 0시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프랑스와의 월드컵 결승전을 기다리면서 이 같은 현실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은 모양새다.
아르헨티나가 이기면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36년 만에 월드컵 정상에 복귀하고, 프랑스가 우승할 경우 2018년 러시아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WSJ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를 따라 각 주택 발코니에서 아르헨티나 국기가 펄럭이고 있으며 수많은 노점상이 메시의 유니폼을 팔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도시 내 공원 곳곳에는 단체 응원을 위한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으며 경찰은 결승전 우승 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가 '7월 9일의 거리'에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 각종 조처를 하고 있다.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 아르헨티나 일부 학교는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으며 일찍 문을 닫는 회사도 있었다.
오토바이 부품 가게를 운영하는 알레한드로 페라시는 어려운 경제 속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일찍 영업을 끝냈다면서 "우리는 월드컵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라시는 그러면서도 "하지만 적어도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이기면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삶은 힘들겠지만, 우승의 기쁨은 4년간 우리를 지탱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리오넬 메시(35·아르헨티나)와 킬리안 음바페(24·프랑스)가 이번 결승에서 맞붙게 된 것도 아르헨티나 사회 초유의 관심사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특히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조국에 월드컵 우승컵을 가져다준 적이 있지만 메시는 아직 그런 구세주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마르티네스는 메시를 향해 "당신이 아르헨티나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면 우리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패배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비난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아르헨티나인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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