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집권 후 가꿔온 젊은 리더십 한번에 '와르르'
"'친절하자' 캠페인 해놓고선 총리는 내로남불이냐"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야당 대표를 '거만한 멍청이'라고 표현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정치적 궁지에 몰리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내세우던 "강해집시다, 친절합시다"라는 표어와 아던 총리의 언행이 불일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고 영국 더타임스 일요판 선데이타임스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13일 뉴질랜드 하원에서 아던 총리가 야당인 행동당 데이비드 시모어 대표를 향해 혼잣말로 '거만한 멍청이'(an arrogant prick)라고 말한 것이 마이크를 탔다.
시모어 대표는 아던 총리가 그간 자신의 치적으로 자부해온 코로나19 방역정책이 무너진 데 비판적 질문을 이어갔다.
아던 총리는 공격적인 질문에 밀리지 않고 침착하게 따박따박 답변을 이어갔다.
그러나 질의응답이 끝난 뒤 감정이 격앙됐는지 TV 생방송 마이크가 켜져 있는 것을 모르고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아던 총리가 내뱉은 'prick'은 남성의 성기를 뜻하기도 하는 금기어로 바보스럽고 불쾌한 사람을 낮춰부르는 욕설이다.
아던 총리가 이끄는 뉴질랜드 정부는 그동안 국민들에게 강력한 코로나19 방역 정책 준수를 요구하면서 서로에게 '친절하자'는 표어를 사용해 왔다.
선데이타임스는 이 문구가 학교 알림판부터 럭비경기장 전광판까지 곳곳에 적혀 있었다며 "아던 총리의 단호하면서도 배려심있는 모습을 상징했다"고 평했다.
자연스럽게 국민들에게는 친절을 당부하면서 총리 본인은 정치적 경쟁자에게 거친 말을 내뱉어도 되겠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온라인에서는 "'친절합시다' 외던 주문은 어떻게 됐느냐", "(아던 총리의) 위선이 드러나고 있다", "가면이 벗겨지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고 선데이타임스는 전했다.
문제는 이런 비판이 아던 총리의 3연임 도전 가도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던 총리는 2017년 37살의 나이에 총리가 됐다.
당시 총선 두 달 전에 당 대표 자리를 거머쥐고, 총선에서는 쉽지 않아 보이던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2019년에는 51명이 숨진 뉴질랜드 총기난사 테러사건을 세심하게 처리해 찬사를 받았고, 2020년 10월 역대급 압승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고강도 팬데믹 봉쇄 이후 인기는 급강하했다. 전세계 정부를 괴롭히는 인플레이션도 정부 인기를 깎아먹고 있다. 최근 뉴질랜드에서는 차량으로 상점에 돌친해 물건을 강탈하는 사건이 잇따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대처가 미진하다는 지적도 많다.
결국 최근 조사에서 아던 총리의 차기 지도자 선호도는 29%로 취임 후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소속당인 노동당 지지율은 올 1월 제1야당인 중도우파 성향 국가당에 역전 당한 뒤 한 차례도 뒤집지 못했다. 더구나 아던 총리에게 욕설을 들은 시모어 대표의 행동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1%포인트나 올랐다. 국가당과 행동당의 연대도 가시화하고 있다.
아던 총리는 '멍청이' 발언에 대해 시모어 대표에게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모어 대표는 "우리가 진정 기다리는 사과는 고물가, 차량돌진 강도사건을 걱정하는 뉴질랜드 국민에 대한 사과"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아던 총리와 시모어 대표는 함께 공식 행사에 참여해 프로 다운 면모를 과시 중이다. 둘은 '멍청이' 발언이 담긴 의사록 사본을 액자에 담아 서명, 경매에 넘기기로 했다. 수익금은 전립선암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시모어 대표는 "크리스마스의 정신으로, 우린 전립선암기금을 모금하기로 했다. 모든 곳의 멍청이(prick)을 위한 모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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