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비서·타자수로 근무…법원 "집단 학살 행위 몰랐을 리 없다"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독일 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서 나치 지휘관 비서 겸 타자수로 근무하면서 1만 명 이상을 살해하는 데 가담한 97세 여성에게 20일(현지시간) 유죄를 선고했다.
BBC 방송·AP 통신에 따르면 독일 북부 이체호 법원은 이날 1만505건의 살인을 조력하고 5건의 살인 미수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름가르트 푸르히너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푸르히너는 18세였던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폴란드 그단스키 인근의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SS 나치 친위대 지휘관 비서 겸 타자수로 일했다.
1939년 나치 독일에 의해 설립된 슈투트호프 수용소는 1945년 폐쇄될 때까지 유대인과 폴란드인 6만 명 이상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현장이다.
법원은 "푸르히너는 해당 수용소 내 지휘관 사무실에서 타자수로 근무할 당시 수감자 1만505명이 가스실 등에서 잔인하게 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그가 서류 작업 처리 등을 통해 조직적 학살을 의도적으로 지지했다고 밝혔다.
도미니크 그로스 판사는 푸르히너가 일하던 사무실은 처음 수용소에 도착한 수감자가 대기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있었으며 그가 근무 중 화장터에서 퍼져나오는 연기를 보지 못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푸르히너는 범행 당시 나이를 고려해 이날 소년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미국 유대인 단체 '사이먼 비젠탈 센터'에 소속돼 '나치 전범 사냥꾼'으로 잘 알려진 에프레임 주로프는 "소년법원임을 고려할 때 오늘 푸르히너에게 내려진 건 최선의 판결"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끔찍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데 너무 늦은 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푸르히너는 이날 재판에서 과거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했으며 자신이 그 수용소에 있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독일에서 살인죄와 살인 방조죄는 공소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2011년 법원이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존 뎀야누크(당시 91세)에게 직접적 증거가 없는데도 살인 조력 혐의의 유죄를 인정한 것을 분기점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유죄 평결이 이어지고 있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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