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요청에 바이든 '지속 지원' 화답…지원 당위성 한목소리 '부각'
젤렌스키 "내년이 전환점" 승전 의지 강조…전쟁 장기화 가능성 등 변수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21일(현지시간) 전격적인 미국 방문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 여론을 확대하는데 일차적 초점이 맞춰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번 방문이 러시아 침공으로 지난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다.
시기적으로는 미국 의회가 막대한 우크라이나 지원도 포함된 2023 회계연도 예산안을 막판 심사하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올리브색 점퍼와 티셔츠 등의 전투복 차림으로 워싱턴 DC 땅을 밟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뒷받침하듯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는 물론 미국 국민에 반복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지속적인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3월 화상으로 미국 의회를 향해 연설할 때는 "우리는 매일 9·11 테러를 겪고 있다"면서 전쟁을 9·11에 빗대 지원을 호소했다.
이번엔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 회견에서 "러시아 테러리스트 같은 사람들이 당신 집에 왔다고 생각해보라"면서 '역지사지'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패트리엇 미사일을 비롯해 18억5천만달러(약 2조3천억원)의 대(對)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필요한 한 계속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 과정에 "만약 우리가 주권, 영토, 민주주의, 자유에 대한 공격을 방관한다면 세계는 더 나쁜 결과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국 국민은 안다"면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부각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이날로 만 300일이 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내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내 여론을 보면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에 대한 지지세가 약화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우크라이나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바이든 정부에도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7%는 우크라이나에 종전 협상을 촉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7월(38%)보다 크게 높아진 수치다.
이 조사에서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감수하고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해야 한다는 답변은 역시 7월 58%에서 48%로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황이 불리해진 러시아가 이날 병력 규모를 1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증강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열을 재정비하며 장기전 태세를 보이는 것이 여론의 향배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난 9월 이후 우크라이나가 승리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지만, 전황 자체는 일방적인 상황은 아니며 이 때문에 전쟁이 교착되면서 장기전으로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다 대규모 지원을 이끄는 미국의 의회 권력 구조가 바뀌는 것도 문제다.
내년 1월 출범하는 차기 미국 의회에서 하원 다수당이 되는 공화당은 '백지수표식 지원'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젤렌스키 대통령은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도 참석한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여러분의 돈은 자선이 아니고 국제 안보와 민주주의에 대한 투자"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역설했다.
그는 "이 전쟁은 단지 영토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전쟁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여러분이 우리의 승리를 가속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449억달러(약 57조7천40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포함된 미국의 2023회계연도 예산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처럼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방어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으나 두 정상은 앞으로 전쟁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온도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입장차는 첨단 무기 지원이나 종전 협상 문제 등에 대한 두 정상의 발언을 통해 확인됐다.
가령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몰아내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젤렌스키 대통령)의 대답은 예스다"고 운을 떼면서도 첨단 무기에 대한 모든 지원이 어려운 미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현재까지와 근본적으로 다른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준다는 생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 전 세계를 분열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자체 방어에 필요하고 전장에서 이기는데 필요한 무기를 공급할 것"이라고 명확히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종전 협상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과도 맞물려 있다는 평가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 추구 의사를 강조한 뒤 반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중단 의사가 없다고 평가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장에서 이길 것이기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 대화할 준비가 되면 그는 거기(협상)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협상할 때 더 유리한 상황에서 이를 풀어갈 수 있도록 미국이 전쟁을 돕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평화는 주권과 영토에 대한 타협이 아니다"라면서 분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영토를 일부 포기하면서 평화 협상을 할 의사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대(對)러시아 단일대오 대응을 재확인하면서도 전쟁 종래 방식에 대해서는 온도 차를 보이면서 향후 전쟁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그동안 협상 문제는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판단이라는 입장을 밝혀온 미국이 당장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종전 협상을 압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이 지루한 소모전 양상으로 흐를 경우 전쟁 지원에 대한 전반적인 지지 여론의 강도가 약화할 수 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지원 결정에 영향을 주면서 미국의 전폭적 지원 아래 영토의 완전 수복을 추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전략에도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평화 공식(peace formula)'을 언급한 뒤 "이를 우리가 실행하는 것을 돕기 위해 미국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매우 구체적 조치를 제안했다"고 말한 것이 눈길을 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군 철수와 적대행위 중단을 비롯한 평화협상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평화 공식' 발언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종전 협상과 관련된 특정한 조건이나 상황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요청을 미국에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도 전쟁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지원을 계속해줄 것을 강조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젤렌스키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내년은 전환점이 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와 미국인의 결의가 공통된 자유의 미래를 보장하는 시기가 돼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그는 "전투에서 버티는 것뿐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데에 여러분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지원 확대를 거듭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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